도시는 아직 완전히 잠들지 못한 밤이었다. 항만에서 올라오는 기름 섞인 바닷내가 언덕 위까지 밀려와 도로를 감쌌다. 비가 그친 지 오래되지 않아 아스팔트는 희미하게 젖어 있었고, 가로등 불빛은 물기를 머금은 노면 위에서 길게 번져 있었다.
남쪽 절벽과 북쪽 오래된 주거지가 맞닿는 경계선에는 한 줄기 도로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도로를 그림자 항로라 불렀다. 낮에는 평범한 도심 외곽 도로처럼 보이지만, 밤이 되면 도시의 가장 깊은 구석과 바다 아래의 어둠을 이어주는 균열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 시간에 그림자 항로를 지나는 차는 많지 않았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도로를 떠돌고, 멀리 항만의 크레인들이 무성한 그림자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도로 위를 한 대의 검은 세단이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운전석에는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고, 조수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뒷좌석에는 누군가가 눈을 감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뒷좌석의 여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눈을 감은 것이 단지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의식이 없는 상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스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잠깐씩 드러났다. 창백한 이마, 마른 입술, 그리고 낯선 도시에 막 떨어진 사람처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
운전석의 남자는 룸미러를 흘끗 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거의 다 왔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림자 항로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도로 옆 절벽 아래에서 갑자기 강한 빛이 치솟았다. 항만의 불빛과는 전혀 다른 색의 빛이었다. 차 안으로 흰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 남자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타이어가 노면을 긁는 소리가 어둠 속으로 찢겨 나갔다. 차가 미끄러지며 도로를 비스듬히 가로질렀다. 핸들이 마음대로 돌아갔고, 남자의 손은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한순간에 뒤집혔다.
빛이 폭발하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차창 밖 풍경이 위아래로 뒤섞였다. 차체가 한 번 크게 튕기고 난 뒤, 둔탁한 충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금이 가는 유리 소리, 구겨지는 철판 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언가 단단한 것에 정통으로 부딪히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그 다음에는 적막만이 남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먼저 돌아온 것은 차가운 공기의 감각이었다. 젖은 흙 냄새와 섞인 바닷바람이 폐 속으로 서서히 밀려들었다. 그 바람 속에는 녹슨 철과 소금기와 오래된 먼지의 냄새가 얇게 섞여 있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는 허옇게 번져 있었고, 왼쪽 관자놀이가 심하게 욱신거렸다. 귀에서는 낮게 울리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조금 뒤에는 자기 심장 소리와 뒤엉킨 둔탁한 박동처럼 느껴졌다.
일단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이 또렷했다.
그녀는 몸을 조금 움직이려다 멈췄다. 온몸이 쥐가 난 것처럼 뻣뻣했고, 어디가 어떻게 다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손끝으로 주변을 더듬자 차가 아닌 차가 아닌 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바닥은 단단했지만 차갑지 않았다. 콘크리트가 아니라 오래된 목재 바닥 같았다. 손가락 끝이 닿는 결이 거칠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더 뻗어 벽을 찾았다. 벽에는 거친 회반죽의 느낌이 묻어 있었다.
어둠에 조금씩 눈이 익어가자 희미한 형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낡은 소파, 벽에 아무렇게나 걸린 코트, 기울어진 스탠드 조명, 작은 주방이 보이는 개방형 구조.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바깥의 빛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는 도로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자신이 차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차에서 내려 누군가에게 옮겨진 것인지, 아니면 내 스스로 걸어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뿐이었다.
어지러움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했다. 가장 먼저 떠올라야 할 것 같은 단어였다.
그러나 입술이 아무 이름도 내주지 않았다.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이름 뒤에 이어질 말은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희미한 자음과 모음이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느낌은 있었지만, 차갑게 부딪힐 뿐 하나의 소리로 합쳐지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더 이상한 장면이었다.
물속 같기도 하고 안개 속 같기도 한 공간. 그 안에서 누군가가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간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져 있고, 아래쪽에서는 푸른 빛이 새어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뒷모습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직감만이 남았다.
그 장면이 사라지자 다시 방이 보였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의 구석, 소파 옆 테이블 위에 작은 유리잔이 뒤집혀 있었다. 바닥에는 검은 가죽 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낡은 코트와 스카프가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사람이 살던 흔적이 있지만 지금은 비어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
몸을 일으키는 데만도 몇 번의 시도가 필요했다. 그녀는 먼저 옆으로 몸을 돌려 옆으로 기어가듯이 소파 가장자리를 잡았다. 소파의 천은 거칠고 오래 사용한 느낌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겨우 일어나자 어지러움이 다시 몰려왔다. 눈앞이 잠깐 검어졌다가 돌아왔다. 그녀는 벽을 짚고 몇 걸음 옮겼다.
거울이 있었다.
주방과 방 사이의 좁은 벽에 길쭉한 전신 거울이 걸려 있었다. 먼지가 얇게 덮여 있었지만, 그녀의 형체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작게 갈라진 입술, 눈가에 번진 피곤함, 검은 머리칼이 어깨에 흩어지듯 내려와 있었다. 낯선 얼굴이었다. 낯설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낯설었다.
거울 속 여자를 바라보며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누구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얇은 회색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 허리에는 메탈 버클이 달린 벨트가 느슨하게 매어 있었다. 옷의 질감과 냄새로 미루어 보아 값비싼 것은 아닌 듯했다. 발에는 검은 플랫 슈즈가 신겨져 있었다.
모두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누군가에게 빌려온 것 같지도 않은 사이즈였다. 자신이 늘 입던 옷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증명해줄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벨트 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이 떨렸다. 혹시 주머니에 작은 종이쪼각이라도 들어 있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벨트 안쪽에서 손가락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주 작은 금속의 촉감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얇은 쇠줄에 매달린 작은 금속 조각이 나타났다. 너무 작아서 목걸이 펜던트라기보다는 키링에 달린 이름표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것을 눈앞에 가까이 가져왔다.
거칠게 새겨진 글자가 하나 보였다.
리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 단어를 입술 사이로 되뇌었다.
리테.
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 이름이 자신의 것인지 단번에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일단 이 방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이름이 되었다.
그녀는 목에 걸려 있던 쇠줄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더듬었다. 얇고 싸구려처럼 느껴지는 금속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리테.
그녀는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심장 박동과 함께 그 음절이 반복되었다.
벽 시계가 조용히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리테는 그제야 방 안에 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둥근 시계의 분침은 이미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세 시. 도시의 대부분이 잠들었을 시간. 그러나 그림자 항로 주변은 이 시간에 가장 살아난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서 들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리테는 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다시 허공을 더듬는 느낌만이 돌아왔다.
그녀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은 무거운 벨벳 천으로 되어 있었고, 한쪽 모서리가 약간 들려 있어 그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커튼을 젖히자 방 안으로 도시의 새벽이 흘러들어왔다.
낡은 빌라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언덕 아래로 도로가 한 줄기 뻗어 있었다. 그 도로를 따라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고, 그 너머에는 항만의 불빛이 잔잔하게 반짝였다. 바다 위에는 거대한 화물선의 그림자가 검게 떠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이 도시의 이름이 무엇인지 떠올리려 했지만, 머릿속의 지도는 백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림자 항로라는 이름만은 어딘가에 박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리테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림자 항로.
마치 언젠가 여러 번 불러본 적이 있는 지명처럼 입안에 익숙하게 맴도는 소리였다.
몸이 떨렸다.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다른 감정 때문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때 문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바깥 복도를 지나가는 소리였다. 가벼운 발자국 소리, 문손잡이가 미세하게 떨리는 소리, 그리고 바로 옆 방에서 들려오는 낮은 기침 소리.
여기에는 나 말고도 누군가가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방 안이 조금 덜 낯설게 느껴졌다. 완전히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섞인 건물. 빌라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구조.
그러나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 빌라가 안전한 곳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도 없었다.
리테는 잠시 문 쪽을 바라보다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람이 이 빌라에 있을까. 아니면 이미 떠났을까.
머릿속에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문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발 아래에서 오래된 마루가 가볍게 삐걱거렸다.
문에는 안쪽에서 잠글 수 있는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잠겨 있지 않았다. 누군가가 급하게 들어와 다시 나간 것처럼, 문틀에는 희미한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리테는 손잡이에 손을 올려보았다. 차갑지 않았다. 누군가가 얼마 전에 잡았던 온기가 아주 약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문을 열어 바깥 복도로 나가야 할지, 아니면 이 방 안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두 선택 모두 위험했고, 두 선택 모두 어쩌면 필요했다.
결국 그녀는 잠금장치를 아래로 내렸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안쪽에서 잠겼다.
일단은 몸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였다.
리테는 다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작은 냉장고 위에는 물병 두 개와 알 수 없는 알약이 담긴 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유통기한이 적힌 라벨은 희미하게 닳아 있었지만 아직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물병을 들어 올리자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방 안 공기에 비해 물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마치 누군가가 조금 전까지 냉장고를 최고 단계로 틀어놓았던 것처럼.
누가, 왜.
그녀는 생각을 끊고 한 모금 물을 마셨다. 바닷바람 때문에 입안에 남아 있던 짠맛이 조금 가셨다.
알약 병을 열어볼까 하는 고민도 잠시 했다. 그러나 라벨에 적힌 글씨가 흐릿했고, 약의 용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삼키는 일은 지금의 자신에게 너무 큰 결정을 요구하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알약 병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침대는 방 한가운데가 아니라 창가와 거울 사이에 기묘하게 비껴 서 있었다. 매트리스는 오래 사용한 흔적이 있었고, 흰 이불은 조금 누렇게 바랬지만 깔끔하게 개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정돈해둔 흔적이었다.
마치 이 방에 낯선 사람이 들이닥칠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둔 것처럼.
리테는 다시 한 번 목에 걸린 쇠줄을 만졌다.
리테.
그 이름은 아직 낯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단어도 아니었다.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매트리스가 몸무게를 받아들이며 아래로 살짝 꺼졌다. 창문 밖에서는 멀리 항만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출항을 알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작업을 마치는 신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갑자기 어떤 표정이 떠올랐다.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눈이 조금 가늘게 접히고, 입가에 단정한 곡선이 그려진 얼굴. 그 얼굴이 리테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결국 이 도시로 돌아올 거야.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떠올리기 전에 장면이 부서졌다. 그와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떠올랐다.
돌아온다.
리테는 그 단어에 걸려 멈춰 서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로 돌아온다는 말. 그렇다면 나는 이 도시를 떠났다가 다시 온 것일까. 이 도시는 내게 어떤 곳이었을까.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추론을 이어가는 것은 마치 실이 끊어진 연을 붙잡으려는 것과 같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가도, 바람이 방향을 틀면 다시 멀어졌다.
문득 바닥 쪽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아래였다. 쪼그려 앉아 손을 뻗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에 걸렸다. 그녀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끌어냈다.
작은 열쇠였다. 오래되어 약간 변색된 열쇠. 손잡이 부분에는 흐릿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숫자와 알파벳이 뒤섞인 짧은 문장이었다.
B2.
리테는 그 조합을 바라보았다.
지하층.
이 빌라에 지하층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열쇠가 여기 있다는 것은, 적어도 이 방과 완전히 무관한 공간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열쇠는 한 손에 쥐기에 충분히 작았다. 그녀는 열쇠를 손바닥에 넣고 가볍게 쥐었다.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나가, 빌라의 지하로 내려간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이 방에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관자놀이의 통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다리 근육은 오래 달린 후처럼 무거웠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려가야 할 것이다.
리테는 침대에 몸을 기대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오래된 물 얼룩이 동그랗게 번져 있었다. 마치 그 얼룩들이 이 빌라에서 흘러간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언젠가. 누군가와 이 천장을 함께 올려다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숨소리, 나지막한 대화, 서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
그러나 그것은 너무 짧게 스쳐 지나가 금세 사라졌다.
리테는 눈을 감았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머릿속은 더 어지러워졌다. 기억을 억지로 끌어내리려 하는 시도는 오히려 눈앞을 흐리게 만들 뿐이었다.
일단은 잠을 자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몸 구석구석을 찌르는 이 순간에도, 잠이라는 것은 여전히 필요했다.
그녀는 이불을 펼쳐 몸을 눕혔다. 매트리스가 다시 한 번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창문 틈을 통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눈을 감자 그림자가 밀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둠이라기보다는 더 두꺼운 안개에 가까웠다. 안개 속에서 계단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테.
낮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렸어.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리테는 자신이 이미 여러 번 이 계단을 내려가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꿈과 기억의 경계가 흐려졌다. 계단 아래에서 올라오는 푸른 빛이 그녀의 발목을 적셨다.
눈을 뜨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을 뜨는 순간 이 장면은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으면 이 계단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답을 얻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다시 방이었다.
천장, 얼룩, 창문, 커튼, 침대, 그리고 손 안에 쥔 작은 열쇠.
모든 것이 원래 있던 위치에 그대로 있었다.
리테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심장이 여전히 조금 빠르게 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도시의 어디선가, 그림자 항로를 따라 또 다른 차들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새벽에 항만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산 위의 집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더 깊은 어둠을 향해 걸어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어딘가에는, 리테를 이 빌라로 옮겨 놓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적인지, 동료인지, 혹은 이전의 자신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리테는 손에 쥔 열쇠를 한 번 더 꼭 쥐었다.
지하로 내려갈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 도시가 낮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한 번쯤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낮의 빛은 그림자를 드러낸다. 그리고 때로는, 가장 깊은 어둠의 윤곽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도 낮의 빛이었다.
리테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첫 번째 밤은, 그렇게 균열 위에서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