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7부 예견된 공포와 나타난 낯선 사내

도시는 밤이 되면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조금 더 느릿하게 호흡을 내쉬는 것처럼 보였다. 낮 동안 항만의 소음과 도시의 동요로 뒤섞여 있던 숨결은 어둠이 내려오자 갑자기 가라앉았고, 가로등 불빛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잔잔히 흔들렸다.

리테는 폐허 식당을 뛰쳐나온 뒤 한참 동안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식당 창문 너머로 본 작은 실루엣, 그것이 유라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실루엣은 그녀의 기억 깊은 곳을 찔러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울림을 남겼다.

길은 어둠 속에서 길게 이어지고 있었고, 바람은 저 멀리 항만 쪽에서 불어와 도시의 골목을 헤집고 지나갔다. 어두운 골목 일부는 물이 고여 있어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반사됐다. 리테가 달릴 때마다 그 물의 표면은 흔들리며 그림자와 빛을 계속 뒤섞었다.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조차 스스로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몸이 먼저 반응했다.
누군가가 부르고 있는 듯한 느낌.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단서를 손에 쥐고 같은 어둠을 걷고 있을 것 같은 기묘한 확신.

도시의 한 블록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바람이 멎었고, 주변은 고요했다. 사람들이 재워둔 겨울 담요처럼 도시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리테는 골목 입구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몸속까지 차가워진 공기가 폐를 서늘하게 지나갔다.

그때였다.

골목 어딘가에서 또렷한 소리가 울렸다.
탁, 탁, 탁.
규칙적으로 울리는 발걸음 소리.

그 소리는 도망치는 발걸음이 아니었다.
천천히 걸어오는 발걸음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 이 골목을 조용히 지나오는 듯한 소리.

리테는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골목의 공기가 묵직하게 눌렸다.
그 소리는 그림자 항로의 어둠과 같은 결을 지닌 소리였다.

그 소리를 따라 그림자가 나타났다.
가로등 불빛이 어깨 위에 걸려 만들어낸 검은 형체.
얼굴은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지만, 실루엣은 선명했다.
길고 삐죽한 외투 끝자락이 바람 없이도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내는 리테 앞에서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시는 바람까지 죽어 있었다.
한순간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사내의 숨소리만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울렸다.

리테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사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를 수도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이 도시에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사내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그제야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 일부를 비추었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없었고, 젊지도 늙지도 않은 희미한 인상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무표정했다.

그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늦었어.

낮은 목소리는 바닥의 물웅덩이를 울리듯 번져 갔다.
소리가 끝나자 골목이 다시 고요 속에 잠겼다.

리테는 입술이 바싹 말라 말을 내뱉지 못했다.
사내는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의 발걸음은 천천히 앞으로 이어졌다.

마치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리테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다.
등이 벽에 닿자 차가운 돌벽이 몸을 뒤덮는 느낌이 들었다.
사내는 그녀와의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불빛 아래에서 사내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의 눈동자에는 빛이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어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눈 속 깊숙이 이상하게 흔들리는 그림자 덩어리가 떠다니는 듯 보였다.

리테는 본능적으로 손목을 잡았다.
그곳에는 작은 금속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사내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리테의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너에게 그 이름이 있지.

그 말은 리테의 귓가를 가르듯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 목걸이에는 리테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사내는 리테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떠올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다시 입술을 열었다.

리세는 어디에 있지.

그 순간 리테는 심장이 멎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 이름이 또다시 어둠 속에서 끌려 나왔다.
방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카드 뒷면에 적혀 있던 이름.
지하 계단 아래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불렀던 이름.

리세.

그러나 지금 그는 리테의 목에 걸린 금속 조각을 보고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리테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리세가 아니야.

사내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리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말했다.

기억이 지워지면 모두 같은 말을 하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내가 어디 있었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리테는 숨이 끊어진 것처럼 답을 하지 못했다.
사내는 아주 조용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손가락은 차갑지도 않았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온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공기와 같은 촉감이었다.

사내는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는 이미 여기로 돌아왔어.
그 말은 기억나니.

리테는 고개를 저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묘하게 슬퍼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손을 놓았다.
마치 중요한 사실을 갑자기 깨닫고 뒤로 물러난 사람처럼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사내의 얼굴이 순간 경직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군.

그 말과 동시에 그의 눈빛이 완전히 바뀌었다.
경계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배어 있었다.

사내는 리테를 살펴보다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골목 저편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빨라지고, 곧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실루엣은 어둠 속으로 흔들리며 사라졌다.

그가 사라질 때 남긴 마지막 말은 공기 속에서 가볍게 흩어졌다.

아직 때가 아니야.

리테는 그 말을 들으며 벽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복도에서 들리던 낮은 속삭임, 지하 계단 아래의 숨소리, 폐허 식당의 사내가 건넨 경고, 그리고 방 안에서 발견한 종이 조각 위 경고문까지.

모든 것들이 이어졌다.

그림자.
기억.
리세.

그리고 방금 만난 사내가 말했던 단 한 문장.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다는 말.

그 말은 곧 자신이 아직 무언가를 잃지 않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혹은 아직 잃을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방금 만난 사내는 위험한 존재였다.
그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리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골목을 빠져나왔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나 그 혼란 한가운데에서 단 하나의 확실한 방향은 더 선명해졌다.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그 지하 어딘가에 있는 심연극장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 리세라는 이름의 비밀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방금 사라져간 사내의 그림자가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도시는 이제 완전히 밤이 되었다.
가로등 아래 리테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졌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걸음을 다시 옮겼다.

두 사람을 잇는 보이지 않는 길은, 점점 더 어둠 깊은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