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 사이의 공기가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
리세의 목소리가 울린 그 순간, 심연극장의 벽면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몸처럼 천천히 수축하며 심장박동 같은 파동을 만들어냈다.
그 파동은 바닥 아래로 길게 내려가 심연의 더 깊은 층을 흔들었다.
유라와 리테는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발밑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바닥이 아주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리세는 침착하게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은 닮아 있었고
두 사람 중 누구와 더 닮았는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중간 지점에 서 있었다.
마치 두 조각이 붙어 만든 원래의 형상이 그의 얼굴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뒤 리테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너는… 우리였다는 거지
우리가… 너의 일부였다는 뜻이야
리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너희 둘은 원래 나의 두 개의 그림자였어.
기억이 둘로 찢기기 전에는
너희는 나의 두 감정이었지.
감정.
유라는 그 말에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그곳에서 무언가 오래 묻혀 있던 정서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어떤 감정이
누구의 감정이
왜 갈라졌는지
아직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했다.
그 감정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리세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심연극장의 깊은 어둠 속에서 울림이 점점 크게 피어올라
그의 목소리는 공기 전체에 퍼지는 울림처럼 들렸다.
유라
너는 분리된 감정 중
빛이었다.
리테
너는 분리된 감정 중
그림자였다.
그 말은 너무 단단하게 떨어졌고
두 사람의 가슴을 깊게 때렸다.
유라는 숨을 들이마시기도 전에 눈을 크게 떴다.
빛…
그럼 나는… 너의 밝은 쪽이었단 말이야
리테는 즉시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어두운 쪽이었다는 거야
리세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사이로 심연 아래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그가 입을 열었다.
그게 잘못이 아니야.
누구나 빛과 그림자 둘 다 가지고 있어.
나는 둘을 다 감당할 수 없어서
기억 속에서 갈라져 버린 거야.
그 말은 차분했지만 슬펐다.
그 어떤 설명보다 슬펐다.
유라와 리테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이 서로 닮아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뚜렷하게 느껴졌다.
둘은 서로의 두 감정이었다.
둘이 합쳐져 하나가 되었을 때
하나의 인격
하나의 기억
하나의 이름
리세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세가 말하던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존재가
너희 둘을 갈라놓았다고 했지.
유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존재가 누구야
누가 우리를 둘로 쪼갠 거야
리세의 표정이 미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천천히 뒤쪽 어둠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심연의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심연극장 아래
가장 깊은 층에는
기억을 먹는 존재가 있어.
유라와 리테는 동시에 몸을 굳혔다.
그 존재는 이름을 갖지 않아.
이 도시에서 잊어버린 모든 이름을
삼켜 온 존재야.
리세는 더 낮고 깊은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 존재는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을 먹으면
그 사람을 둘로 나눌 수 있어.
기억을 둘로 쪼개고
감정을 둘로 나누고
이름을 지워버릴 수 있어.
그 말은 너무 잔혹했다.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이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너무 현실적이었다.
유라는 숨을 떨며 물었다.
그 존재가…
우리를 쪼갠 거야
리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 둘은
그 존재가 만든 두 개의 그림자야.
둘 다 나의 조각이지.
리테의 손끝이 떨렸다.
그럼 왜
왜 우리를 쪼갠 거야
리세는 말없이 유라를 바라보고
다시 리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너희 중
한 명이
그 존재에게 선택되었기 때문이야.
둘은 동시에 숨을 멈췄다.
리세는 더 깊은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심연 아래에서 울리고 있는 소리.
그 소리는 두 사람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존재는
한 그림자만을 원하는 법이 없지.
늘 두 그림자 중
더 약한 쪽을 먼저 데리러 와.
유라는 어깨가 떨렸다.
리테는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그러자 심연 아래의 울림이
한층 더 강하게 터져 나왔다.
리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 존재는
다시 깨어나고 있어.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창백해졌다.
심연의 깊은 곳
보이지 않는 저 아래에서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존재는
두 그림자를 다시 삼키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