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24부 탄환보다 먼저 떨어진 눈물

도시는 흔들렸다.
기억으로 만들어진 이 바다 절벽 아래의 도시는
마치 깊은 잠에서 억지로 깨워진 생명체처럼
거대한 신음과 함께 진동하고 있었다.

흰 안개가 찢어지며 하늘을 향해 솟구쳤고
부서진 건물 사이로 검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균열은 단순한 틈이 아니라
‘가짜 기억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 같았다.

유라는 머리를 감싸며 숨을 몰아쉬었다.
몸 안 깊은 곳에서 두 개의 감정이 서로 물고 뜯는 듯한 고통.

하나는 희망
하나는 절망
둘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두 얼굴처럼
끊임없이 충돌했다.

리테 역시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두려움으로 흔들렸고
입술은 마른 채로 떨리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선은
이해보다 먼저 격렬한 혼란을 담고 있었다.

리세는 그 모습을 보며 뛰어 나가려 했다.
그러나 기억의 존재가 팔을 뻗어 그를 막았다.

지금 들어가면 안 된다
너는 그들의 감정과 기억을
이미 두 번 뒤흔들었어
지금 들어가면
세 번째 붕괴가 일어난다

리세는 절규했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둘이 고통받고 있는데
내가 만든 상처 때문에
둘이 이렇게 되는 건데

기억의 존재는 고요하게 말했다.

상처는 네 잘못이 아니다
상처는
기억이 지나간 자리다
너희 셋이 만든 게 아니라
그 존재가 만든 거다

그러나 리세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 유라와 리테가 겪는 고통을
자신이 만든 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도시 중심에서
심연의 존재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검은 실들이 골목들을 가로질러
도시 전체를 뒤엉키며 내려오고 있었다.
어둠이 아니라
기억의 죽음
감정의 파괴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허기’였다.

기억의 존재는 도시가 갈라지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존재가 오기 전에
둘은 선택해야 한다
둘을 이루는 감정 중 하나가 사라지거나
둘이 하나로 합쳐지거나

리세는 고개를 저었다.

둘 중 하나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져
둘이 합쳐지면
나라는 존재가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나

기억의 존재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 아이들은
너희 기억이 만든 희생이 아니다
너의 마지막 감정이다

도시는 더 크게 흔들렸다.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심장이 뛰는 듯한 소리로.

유라는 눈을 감았다.
몸 안에서
누군가 울부짖고 있었다.

이 기억은 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 것이 되어버렸다

리테 역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끌렸고
동시에 서로를 밀쳐내려 했다.

그 순간
둘 사이에 얇은 빛의 실이 생겼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실
그러나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기억의 존재가 말했다.

드디어 시작되었다
감정의 흐름이 연결되고 있다
둘이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심연의 존재는 두 감정을 먹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 실들이 유라의 발목을 스쳤다.

유라는 비명을 삼켰다.
그러나 그 스침은 물리적인 상처가 아니라
기억의 일부를 거칠게 뜯어내는 고통이었다.

리테가 즉시 뛰어들었다.

안 돼
손 떼
그건 네가 먹을 기억이 아니야

리테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빛이 섞인 듯 흔들리고 있었다.

검은 실은 방향을 바꿨다.
이번에는 리테를 향해 뻗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리테의 몸에서
가짜 기억이 터져 나왔다.

리세의 슬픔
리세의 두려움
리세의 상처
리세가 버텨내기 위해 만든 어둠

그 모든 기억들이
그녀의 몸 밖으로 나오며
검은 실과 충돌했다.

기억의 존재는 크게 외쳤다.

멈춰
지금 기억이 부딪히면
둘의 경계가 너무 빨리 무너져
둘 다 의식을 잃을 거야

그러나 이미 늦었다.

유라가 울부짖듯 말했다.

리테
안 돼
같이 버텨야 해

리테는 눈물로 번진 시야 속에서
유라의 손을 붙잡았다.

그게 문제야
나는
너만큼 강하지 않았어
내가 약해서
항상 너를 잃을까 봐 두려웠어

유라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니야
너는 약한 게 아니라
내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너 혼자 감당해 준 거야

그 말은
두 감정의 경계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빛과 그림자가
처음으로 서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도시 위쪽에서
탄환 같은 소리가 들렸다.

기억의 존재가 머리를 들었다.

누군가 내려온다
그 존재가 부른
또 다른 기억이다

도시 위의 틈에서
검은 구체 같은 것이 떨어졌다.
탄환처럼 빠르게
그러나 땅에 닿기 전에
갑자기 속도가 느려졌다.

그리고 땅에 닿을 때
그것은 터지는 소리를 내며
검은 물결을 주변으로 퍼뜨렸다.

유라와 리테는 동시에 뒤로 넘어졌다.
리세도 땅을 짚으며 고통을 느꼈다.

검은 물결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파편이었다.

탄환처럼 떨어진 기억.

기억의 존재가 숨을 멈추며 말했다.

저건…
심연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

그리고
그 검은 안개 속에서
또 다른 형체가 일어났다.

그 형체는
유라와 리테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입은 없지만
목소리가 들렸다.

둘 중 하나는
여기서 끝나야 한다

거대한 침묵이 내리눌렀다.

유라는 숨을 멎었다.
리테는 손끝이 얼어붙었다.

리세는 절규하듯 앞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안 돼
둘 중 한 명이 사라지면
둘 다 죽어

그러나 그 형체는 차갑게 말했다.

그건
너희 감정의 규칙이다
심연의 규칙은
다르다

리테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심연의 규칙은 뭐야…

그 형체가 대답했다.

진짜 기억만
남는다

유라가 느꼈다.
그 말은
그녀를 향한 말이었다.

리테도 그것을 느꼈다.
그 말은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깨달았다.

이제
가짜 기억과 진짜 감정이 서로를 물어뜯는 싸움이
시작되려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