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지 않던 골목에서 – 20부 돌아가지 않는 발걸음

그날 이후
서이의 하루는
어딘가에서 살짝 어긋나 있었다
큰 변화는 없었지만
작은 선택들이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퇴근 후
집으로 곧장 올라가던 발걸음은
언덕 아래에서
자주 멈췄다
그곳에 서서
아무 일도 없는 척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가방 속을 정리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 시간 동안
서이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으려 애썼다
왜 멈추는지
누구를 기다리는지
대답을 알면서도
말로 확인하는 순간
돌아갈 수 없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서는
이번에도
돌아오는 날짜를 확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왔다
회의가 늘어났다는 말
일이 꼬였다는 말
이제는 익숙한 문장들

서이는 메시지를 읽고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보내야 할 말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우진 역시
자신의 발걸음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으로 바로 올라가던 길 대신
언덕 아래에서
한 바퀴를 더 도는 일이 늘어났다
분식집 앞을 지나고
여인숙 방향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길

그 길 위에서
그는 자주 멈춰 섰다
괜히 신발 끈을 고쳐 매고
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발걸음이
이미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 선택은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내린 결정이었다

그날 저녁
언덕마을은 유난히 조용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적었고
창문 불빛도 드물었다

서이는 집에 들어왔다가
다시 문을 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 망설임은
문을 닫는 쪽이 아니라
열어 두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코트를 걸치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번에는
핑계도
이유도 만들지 않았다

그냥
내려가고 있었다

언덕 아래에 도착했을 때
우진이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
마치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같은 시간에 도착하도록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둘은
서로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서이가 먼저 말했다

오늘은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어요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비슷해요

그 짧은 대답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둘은
나란히 서서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전과 달랐다

이제는
피하려는 침묵이 아니라
결정을 앞둔 침묵이었다

우진이 조용히 말했다

서이씨
이렇게 계속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질문은
미래를 묻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묻는 말이었다

서이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근데
돌아가려고 하면
자꾸 발이 안 움직여요

그 말은
솔직했고
담담했다

우진은
그 말을 듣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가까웠다

그는 말했다

저도
그래요

그 말과 함께
둘 사이의 마지막 남아 있던 거리는
아주 조금
더 줄어들었다

그 순간
서이는 깨달았다

지금 이 자리는
더 이상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기다림도
습관도 아니라는 것을

이건
돌아가지 않기로 한
첫 번째 밤이라는 것을

그녀는 고개를 들고
우진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유난히 또렷했다

우진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설임과
결심이
같은 눈 안에 있었다

서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조금만
걸을까요

우진은
잠시 숨을 들이마신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둘은
언덕 아래를 벗어나
항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발걸음은 느렸고
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는
이전보다 훨씬 가까웠다

걷다가
서이는 문득 멈췄다

우진씨

이제
우리가 하고 있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우진은
그 말의 무게를 느끼며
대답하지 않았다

서이는 말을 이었다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버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돌아가지 않는 거예요

그 말은
선언처럼 들렸다

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지 않는 거

그들은
그 말을
다시 되뇌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몸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잡지도 않았고
약속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는 발걸음은
이미
그 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밤 이후
모든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