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지 않던 골목에서 – 24부 이름이 먼저 새어나온 밤

그날 밤
서이는 집에 돌아와도
바로 잠들지 못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눈은 감기지 않았다
천장 위로
가로등 불빛이
커튼 틈 사이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남편이 돌아온다
그 사실은
현실처럼 무겁게 다가왔지만
그보다 더 크게
서이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직 부르지 않은 이름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그 이름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고
숨을 쉴 때마다
조금씩 앞으로 밀려 나왔다

서이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까지만
오늘까지만

그러나
그 말은
약속이라기보다
시간을 미루는 방식에 가까웠다

우진도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집 안은 조용했고
아내가 없는 공간은
이제 낯설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
불을 켜 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원고도
노트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언덕 아래에서
서이가 말하던 목소리만 남아 있었다

오늘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문장은
이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우진은
창가로 가서
언덕 위를 바라보았다
서이의 집 쪽 창문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그 사실이
괜히 더 선명하게
그녀의 존재를 느끼게 했다

그는
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이제는
숨기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러웠다

다음 날
서이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집에 남편이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조금 더 길게 가지고 싶었다

집에 들어와
코트를 벗고
가방을 내려놓았지만
마음은
집 안에 머물지 않았다

시계를 보다가
결국
다시 문을 열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그 계단은
이미 수없이 오르내린 길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더 낯설게 느껴졌다

서이는
천천히 내려갔다

그곳에
우진이 서 있었다

놀랍지 않았다
마치
서로가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있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서이는
잠시 멈췄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우진이
먼저 말했다

오늘은
좀 빨리 나오셨네요

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잠깐 있다가요

그 말 뒤에
설명은 붙지 않았다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은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항구 쪽도
언덕 위도 아닌
중간쯤에서
천천히

공기는 차가웠고
숨이 조금씩 하얗게 보였다

우진이 말했다

내일
돌아오신다고 했죠

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밤에요

그 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처럼 들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서이가 멈춰 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진씨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그 호칭 속에는
이미 이름이 담겨 있었다

그는
숨을 멈춘 채
서이를 바라보았다

서이는
천천히 말했다


이제
이름을 안 부를 수가 없어요

그 말은
허락을 구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미
결정된 사실을
알리는 말이었다

우진은
한 발짝 다가왔다

그 거리에서
그녀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부르세요

그 순간
서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입술이 떼어지고
숨이 섞이며
마침내
그 이름이
밖으로 나왔다

우진

그 이름은
크지 않았고
조용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보다
선명했다

우진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눈을 감았다
짧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서이

그 두 음절은
그동안 쌓아 온
모든 침묵을
한 번에 무너뜨렸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돌아설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손이 먼저 닿았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망설임 없이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이미
선 하나를 넘고 있었다

우진이 말했다

이제
모르겠어요
어디까지 가야 할지

서이는
그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대답했다

저도요
근데
이제는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요

그 말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했다

그날 밤
둘은
오래 서 있지 않았다
더 오래 머물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헤어지기 전
우진이 말했다

오늘은
이름만

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이름만

그러나
그 이름은
이미
모든 것을
시작시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서이는
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고 있었다

우진 역시
집에 돌아와
불을 끄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이름을 부른 순간
이 관계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방향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앞으로만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