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서이의 하루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남편의 움직임이 늘어났고
말도 이전보다 많아졌지만
그럴수록
서이는 더 조용해졌다
남편은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출근했고
저녁에는
비슷한 시간에 돌아왔다
그 규칙적인 생활은
이 집이 여전히
정상이라는 증거처럼 보였지만
서이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이미 끝나 있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
남편이 말을 꺼냈다
요즘
우리
좀 이상하지 않아
그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서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예전부터
이상했어
그 말은
차분했고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남편은
그 대답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같은 결론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있었다
우진 역시
자신의 집에서
비슷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내가 친정에서 돌아온 날
집 안에는
오랜만에 두 사람의 발소리가 겹쳤다
그러나 그 겹침은
겹쳐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서로를 비켜갔다
아내는 짐을 풀며 말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낼게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대답은
환영도
거절도 아니었다
그저
받아들이는 말이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집에 있었지만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진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미
이 집에서도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며칠 뒤
서이와 우진은
언덕 아래에서
다시 마주쳤다
이제는
약속하지 않아도
이 시간이 되면
그곳에 서 있었다
서이는
그를 보자마자
조용히 말했다
집에서
이야기했어요
우진은
그 말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그래서요
서이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말했다
끝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 말은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우진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그 한마디로
둘은
서로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
둘은
그날 오래 걷지 않았다
말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서 있는 동안
둘 다 느끼고 있었다
이제
이 관계는
숨길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
서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등을 보며
낮게 말했다
이상해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끝이 보이는 게
우진은
그 말에
조용히 대답했다
끝은
대부분
말보다 먼저 와요
그 말은
그가 라디오에서
수없이 했던 문장 같았지만
이번에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서이는 말했다
이제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우진은
그 말을 듣고도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는 말했다
네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 말에는
각오와
두려움이
같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서이는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남편은
거실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고
그 목소리는
이제
멀게만 들렸다
서이는
자신이
이미
이 집을 떠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꼈다
우진 역시
집에 돌아와
불을 켜지 않은 채
창가에 섰다
아내의 숨소리는
방 안에서 들려왔지만
그 소리는
그의 마음에 닿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끝이 보이는 순간
그 순간은
이미
두 사람의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무너짐이 아니라
이동에 가까웠다
어디로
어떻게
아직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