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테가 눈을 뜬 아침은 희미한 빛이 창문 커튼 틈으로 스며드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빌라 주변의 건물 외벽은 밤의 흔적을 아직 떨쳐내지 못한 것처럼 축축해 보였고, 도시의 굵은 숨소리는 여전히 낮과 밤의 경계를 헤매는 듯했다.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음에도 리테의 머릿속은 이상하게 맑았다. 물론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방향이 잡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관자놀이가 욱신거렸지만 밤보다 통증은 조금 줄어든 편이었다. 몸의 피로는 남아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손에 쥔 작은 열쇠였다. 밤새 손에서 놓치 않고 있던 그것은 여전히 그녀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B2라는 낯선 조합이 새겨진 열쇠. 그것은 리테에게 어딘가로 향해야 한다는 침묵의 신호 같았다.
그러나 지금 곧장 지하로 내려가기에는 마음속에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일단 이 공간을 조금 더 이해하려고 했다. 방의 구조, 구석구석 놓여 있는 물건들,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줄 작은 단서를 찾고 싶었다.
방 안에는 어젯밤과 같은 물건들만이 있었다. 소파, 가죽 가방, 작은 주방, 오래된 거울, 낡은 침대, 그리고 물병과 알약이 담긴 병. 그녀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조금 더 주의 깊게 보자 어젯밤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작은 흔적들이 보였다. 소파 한쪽 팔걸이에는 긁힌 자국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손톱이나 열쇠 같은 것으로 긁어댄 흔적 같았다.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된 상처처럼 보였다.
소파 앞의 카펫에는 아주 작은 검은 얼룩이 있었는데, 그것이 먼지인지, 타거나 스친 자국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거실 구석에는 작은 휴지통이 놓여 있었는데, 쓰레기들 위에 구겨진 종이 한 장이 가장 위에 놓여 있었다.
리테는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펼쳤다.
손바닥 크기의 메모지였다. 글씨는 급하게 적은 듯 삐뚤삐뚤했고, 글자의 잉크는 약간 번져 있었다. 거기에는 단 세 단어만이 적혀 있었다.
절대 내려가지 마.
리테는 메모지를 바라본 채 움직이지 못했다.
내려가지 마라는 경고.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말리는 사람의 메시지. 그러나 누가 이 메모를 쓴 것인지, 언제 버려졌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녀는 다시 메모지를 들어 올려 빛에 비춰보았다. 종이는 이미 낡은 것처럼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해 있었고, 글씨는 오래전에 적힌 글처럼 보였다. 적어도 최근에 급하게 적은 글씨는 아닌 듯했다.
그럼 이 메모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혹은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같은 경고를 반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리테는 그 종이를 다시 접어 휴지통 위에 올려두었다. 단서를 찾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큰 질문만 늘어났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방 안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가죽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에는 건드릴 여유조차 없었다. 가방은 낡아 있었지만 튼튼해 보였다. 잠금은 되어 있지 않았고, 지퍼가 중간 지점에서 약간 벌어져 있었다.
리테는 서서히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 가방 위에 손을 얹었다.
마치 가방을 여는 것이 자신의 과거를 여는 일인 것처럼 숨을 고르고 천천히 지퍼를 열었다.
가방 안에는 몇 가지 물건이 있었다.
작은 수첩.
흰 셔츠 한 장.
어디선가 본 듯한 검은색 털실 장갑.
그리고 낡은 지갑 하나.
리테는 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집었다. 지갑의 겉면에는 본드로 붙인 듯한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손때가 묻어 약간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지갑을 열자 신분증 같은 것은 없었다. 카드 칸은 모두 비어 있었고, 동전 칸에는 오래된 동전 하나만 들어 있었다.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갑 안쪽 깊숙한 곳에 접혀 있던 종이 한 장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끄집어내 펼쳤다.
종이는 여러 번 접혀 있었고, 그 접힌 자국이 마치 누군가가 오랫동안 들고 다녔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종이 위에는 주소 같은 것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하층 항만 구역
레인 47
바람막이 창고
리테는 주소를 읽으며 그 단어들이 어느 정도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 이름은 떠오르지 않지만 항만 구역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았다. 바람막이 창고라는 이름도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았지만 떠오른 기억은 아니었다.
그녀는 종이를 다시 조심스럽게 접어 지갑 안에 넣었다.
수첩도 열어보았다. 수첩의 첫 페이지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그 날짜는 현재 날짜와 비교했을 때 몇 달 전이었다. 그 이후 페이지 대부분은 비어 있었지만 몇 장에는 단어들이 흩어져 있었다.
리세
항로
기억
새벽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단 한 문장만이 쓰여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절대 뒤돌아보지 마.
리테는 수첩을 천천히 덮었다.
그 문장은 경고인지, 다짐인지, 혹은 누군가의 잔혹한 농담인지 알 수 없었다.
버틸 수 없는 어지러움이 다시 찾아왔다. 기억이 너무 빠르게 덮쳐오는 것도 아니고,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서가 쌓일수록 오히려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웠다. 마치 조각난 거울을 무리해서 이어 붙이는 과정처럼 모든 조각들이 서로를 찌르고 있었다.
리테는 소파에 다시 앉아 숨을 정리했다.
지금 이 방에 있는 단서들은 모두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B2 열쇠. 절대 내려가지 말라는 메모. 바람막이 창고의 주소. 이름처럼 적힌 리세.
이 모든 조각들이 결국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이 길인지 함정인지 모르지만.
리테는 고개를 들어 방의 구조를 다시 살폈다.
방은 작지만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 방을 급하게 떠난 사람이 아니라, 오랫동안 숨어 살았던 사람처럼 보였다.
거울 옆에는 작은 액자 자국이 있었다. 액자는 없어졌지만 벽에 남은 자국은 분명 오래전부터 걸려 있었던 것처럼 물든 색이 달라져 있었다.
그 액자가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다만 리테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곳에 살던 사람이 나였던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은 너무 갑작스럽게 떠올라서 가슴이 잠시 움찔했다. 그런 생각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었지만, 완전히 부정할 증거도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의자에 기대 앉아 창밖 언덕을 바라보았다. 도시는 아침의 공기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문 밖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과도 같고, 옷깃이 스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누군가가 문 앞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였다.
리테는 온몸을 긴장시키며 귀를 기울였다.
건물 복도에는 언제나 거주자의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빌라에서 들리는 발자국은 너무 가볍고 조용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누군가가 자신이 있는 방을 의식하며 천천히 지나가는 듯한 소리였다.
리테는 문 쪽으로 다가가 문옆 벽에 등을 붙이고 숨을 죽였다. 복도에서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깊고 낮은 숨소리.
리테는 한동안 그 숨소리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내 소리는 사라졌다. 완전히.
마치 그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리테는 조심스럽게 문구멍 쪽을 다시 보았다. 시야는 흐릿했고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문을 열어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문에 손을 대는 순간 경고 메모의 글씨가 떠올랐다. 절대 내려가지 마.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메모가 말리는 것은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지 문을 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여는 것이 위험할 것이라는 본능적인 느낌이 리테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녀는 방 안으로 돌아와 창가에 서서 도시를 더 바라보았다.
도시는 낮이 되어도 그다지 밝지 않았다. 항만에서 올라오는 안개 때문에 건물 윤곽이 뿌옇게 흐려졌고, 멀리 보이는 크레인은 그림자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예상치 못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도시 어디엔가 자신의 몸을 이 방으로 옮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도 혹시 빌라 어딘가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리테의 심장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입안이 너무 말라 건조한 먼지를 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은 차갑고 맑았다. 그 차가움이 그녀의 머릿속을 조금 진정시켰다.
리테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다가 문득 벽 한쪽이 약간 어색하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벽의 칠이 일부 벗겨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다른 색의 오래된 벽지가 얇게 드러나 있었다. 벽당이 허물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가까이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그 벽 부분을 살짝 눌러보았다. 단단해야 할 벽이 아주 조금 움푹 들어갔다.
중요한 무언가가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리테의 손끝이 떨렸다. 벽지를 조금 뜯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하지 않았다. 아침의 이 고요함 속에서 무언가를 건드리기에는 주저함이 더 컸다.
그녀는 그냥 벽 앞에 서서 한동안 생각했다.
내가 누구인지 단서를 찾고 싶었지만 동시에 단서를 찾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감추려고 한 것을 발견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권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밤에 들은 기억.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누군가의 뒷모습. 리테라는 이름. B2 열쇠. 절대 내려가지 말라는 경고.
모든 것이 어딘가에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신호는 하나의 방향으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지하.
그녀는 차갑게 식어 있는 열쇠를 바라보았다. 손바닥에 쥐어져 있는 작은 쇠조각.
그 순간 또 하나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회색빛 복도. 맨발. 발바닥 아래 차가운 바닥. 그리고 누군가가 리테의 손을 잡아끌며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날숨과 들숨이 엉킨 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그 장면은 너무 생생해서 리테가 잠깐 벽을 붙잡을 정도였다.
그녀는 크게 숨을 쉬었다.
무언가가 기억 속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끓어오르는 물처럼 조금씩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탁자에 열쇠를 내려놓고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몸이 떨렸다. 왜 떨리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두려움인지, 기대인지, 혹은 기억이 깨어나는 것에 대한 본능적 공포인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경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진실이 위험하더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작은 물병을 들고 몇 모금 마신 뒤 가죽 가방을 다시 닫았다.
수첩을 챙길까 고민했지만 아직은 그대로 두었다. 먼저 자신을 온전히 붙들고 있는 조각들을 더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리테는 문 앞에 섰다. 손잡이가 약간 흔들렸다. 바깥의 공기가 살짝 들이밀려오는 느낌이 있었다.
그녀는 손잡이를 아래로 당겼다. 아주 천천히.
문이 열리며 복도의 쿵쿵 울리는 울림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복도는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분명히 존재했다.
빌라의 복도는 좁고 오래된 목재로 되어 있었다. 바닥이 약간 기울어져 있었고, 벽에는 오래된 전등이 간신히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림자가 벽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리테는 천천히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문 밖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복도 끝에 있었다. 건물의 구조는 단순했다. 일자로 뻗은 복도, 양쪽으로 늘어선 방들, 그리고 끝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철계단.
그녀는 복도 끝까지 걸어가며 양옆의 문들을 스쳐보았다. 대부분의 문은 닫혀 있었고, 일부는 아주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어떤 방은 안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어떤 방은 아예 아무 소리도 없었다.
이 빌라의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자신을 알고 있을까. 혹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 채 이곳에 숨은 것일까.
복도 끝에 가까워질수록 숨이 가빠졌다.
계단 입구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낮의 빛이 건물 밖에서 들어와 계단 일부를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계단 아래는 여전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녀는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첫 번째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바닥이 아주 약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손잡이를 잡자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계단 아래에서 아주 미세한 바람이 올라오는 듯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마치 이 계단 아래에는 낮의 빛이 닿지 않는 또 다른 도시가 있는 것처럼.
리테는 무릎이 떨리는 것을 참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다섯 번째 계단에 발을 디딘 순간.
아래쪽에서 들릴 리 없을 소리가 들렸다.
숨소리.
누군가가 아래에서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그 숨소리는 분명 사람이 내는 숨이었다. 숨을 참았다가 간신히 내뱉는 것 같은 소리.
리테는 계단 위에서 멈춰 섰다.
심장이 가슴을 때리는 듯 울렸다.
누군가가 있다.
그것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숨이었다.
리테는 차가운 바람 사이로 나직하게 떨리는 속삭임을 들었다.
리테.
그녀는 그대로 굳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누군가.
그러나 그 목소리는 인간의 목소리라고 말하기에는 이상한 울림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들을 수 없는 공간의 잔향이 씌워져 있었다.
그녀는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계단 아래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아주 조용하고 느린 움직임.
리테는 계단을 서서히 올라갈까 고민했지만, 바로 그 순간 계단 아래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오지 마.
그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낮고 더 오래된 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더 이상 인간의 언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돌아오지 마.
너는 이미 보고 말았어.
리테의 손은 금속 계단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다시 위쪽을 바라보았다.
계단 위로는 아침의 빛이 있었다. 안전한 듯 보이는 공간. 그러나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이 빌라 전체가 이미 위험한 곳이었다.
리테는 숨을 들이쉬고 엉켜 있는 생각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내려가지 마라는 경고.
누군가의 목소리.
리테라는 이름을 부르는 존재.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기억의 단서인지, 위험의 시작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지하에 답이 있다.
그녀는 떨리는 다리를 억누르고 아래로 내려가려는 순간, 계단 아래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 무거운 물체가 끌리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뒷걸음질 치는 소리.
리테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래에 있는 것은 사람일지도 모르고, 사람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존재가 자신을 부른 이유는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리테는 더 내려가지 못하고 계단 위로 몸을 돌렸다. 숨이 거칠고 심장은 혼란스럽게 뛰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녀는 후퇴했다. 계단 위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