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3부 빛의 항로로 향한 한 소녀의 도착

도시의 낮은 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층 건물들이 뒤엉킨 언덕과 바다를 잇는 길 위로 희뿌연 안개가 떠 있었고, 가로등은 꺼졌지만 회색빛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어 모든 것이 흐린 빛에 잠겨 있었다. 항만에서는 여전히 화물선의 경적이 간헐적으로 울려 퍼졌고, 크레인들이 거대한 팔을 천천히 움직이며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었다.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들이는 사람이라면 어디가 중심부인지, 어디까지가 변두리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건물들은 모두 비슷하게 낡았고, 도로는 모두 비슷하게 갈라져 있었으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오래된 피로와 익숙한 체념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에 처음 오는 한 소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아직 굳지 않은 이야기처럼 보였다.

바다 근처 작은 버스터미널에서 한 대의 시외버스가 멈춰 섰다. 엔진이 꺼지며 진동이 사라지자, 버스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승객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는 어깨에 맨 배낭 끈을 다시 조여 매고,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캔버스 가방을 꼭 쥐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항만의 풍경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낮은 창고 지붕들, 녹슨 철제 구조물, 수면 위에 떠 있는 기름 얼룩.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그런 것들보다 다른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버스 기사와 두세 마디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소녀는 좁은 계단을 내려와 도시에 첫 발을 디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머리카락 끝에는 먼 길을 달려오며 묻은 먼지가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유라였다.

유라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버스터미널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한 공간이었다. 벤치 몇 개와 낡은 매표소, 그리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가로등이 전부였다. 벽에는 오래된 관광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색이 바래 무엇을 홍보하는 포스터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녀는 배낭 끈을 다시 한 번 조정한 뒤, 캔버스 가방 안에서 접혀 있던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손으로 대충 그린 듯한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항만을 기준으로 언덕 위로 올라가는 계단과 길, 그리고 동그랗게 표시된 지점 하나. 그 옆에는 커다랗게 빛의 항로라고 적혀 있었다.

정식 지명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아마도 누군가가 이 도시의 어떤 길에 붙인 별칭일 뿐일 것이다.

유라는 종이를 빛에 비춰보았다. 종이는 여러 번 접었다 폈다 한 흔적이 있었고, 모서리 하나는 이미 얇게 찢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낯선 도시를 향해 떠날 결심을 하고, 돈이 부족해서 여러 번 환승을 하며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가끔은 비좁은 역 대합실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고, 한 번은 버스 표를 잃어버려 기사에게 사정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같은 꿈을 꾸었다.

어둡고 기다란 도로 위를 걸어가는 꿈. 도로의 한쪽은 절벽이었고, 다른 한쪽은 언덕 아래로 꺼진 도시였다. 가로등 불빛이 한참 간격을 두고 서 있었고, 그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꿈 속에서 유라는 늘 그 도로를 따라 걸었다. 걸을수록 발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머리 위 하늘은 점점 더 낮게 내려왔다. 그리고 도로의 끝에 가까워질 때쯤이면, 언제나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뒷모습은 아주 희미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묻혀 있던 무언가를 자극하는 기분을 안겨주었다.

꿈이 깨어날 때마다 유라는 이상한 확신을 품게 되었다.

이 도로는 실제로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곳을 빛의 항로라 부르기로 했다.

왜 그런 이름이 떠올랐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이름은 꿈속 도로와 묘하게 어울렸다.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뚫고 이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빛으로 만든 길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정확히는 우연이라고 부르기에는 이상한 계기로, 유라는 한 온라인 게시판에서 이 도시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바닷가 도시. 항만. 언덕. 그리고 절벽 옆으로 이어지는 한 줄기 도로.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길. 사람들이 그림자 항로라고 부르는 길.

그 글을 읽는 순간 유라는 깨달았다.

자신이 꿈에서 보던 도로가 바로 이 도시의 그림자 항로이며, 누군가가 그것을 빛의 항로라고 부른 적도 있다는 사실을.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 문장은 또렷이 기억났다.

어두운 도로를 끝까지 걸어가면, 잊고 있던 얼굴과 다시 마주치게 된다.

그 문장은 유라를 이 도시에 부른 초대장 같았다.

지금 유라는 그 초대에 응답한 셈이었다.

버스터미널을 벗어나 항만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몸으로 느껴지는 공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차와 사람의 소리가 뒤섞인 도심의 소음 대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물이 철판을 때리는 소리가 더 크게 귀에 들어왔다.

트럭 한 대가 유라 옆을 지나쳐 부두 안쪽으로 들어갔다. 바퀴가 튀긴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소녀의 얼굴 주변으로 흩어졌다.

유라는 약도를 다시 확인했다.

지도 상으로는 항만에서 북쪽으로 언덕을 따라 올라가야 빛의 항로에 닿을 수 있었다. 그 길은 지명 대신 그림자 항로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는 메모가 옆에 적혀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배낭이 조금씩 흔들렸다. 배낭 안에는 옷 몇 벌과 낡은 노트,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버리지 못한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에는 유라의 어린 시절 모습과 함께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두 소녀는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고, 뒤쪽에는 바다인지 호수인지 알 수 없는 물이 희미하게 배경으로 흐려져 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라.
리세.

그러나 유라는 그 사진 속 다른 소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얼굴은 선명했지만, 그 얼굴에 얽힌 구체적인 기억들은 모두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언제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사진 속 두 사람이 어떤 사이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라는 그 사진을 버릴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도시 어딘가에서 이 사진의 빈 구석을 채워줄 조각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 길을 달려오는 동안 그녀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랐다. 항만 구역을 벗어나자 도로는 빠르게 위로 치솟았고, 건물들은 점점 더 좁고 높게 늘어섰다. 세탁물을 널어놓은 줄이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골목마다 다른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어떤 골목에서는 튀기고 삶은 음식 냄새가, 다른 골목에서는 금방 타버린 고무 냄새가 풍겼다.

유라는 땀을 닦을 틈도 없이 계속 걸었다.

약도에 따르면 언덕 중간쯤에 작은 광장이 있고, 그곳에서 왼쪽 길로 꺾으면 빛의 항로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고 되어 있었다.

광장이라고 부르기에는 벤치 두 개와 자판기 하나가 전부인 좁은 공간이었지만, 약도는 거기까지 정확했다. 그 옆에는 벽에 기댄 노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노인은 낡은 모자를 눌러쓴 채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입가에는 잘 지워지지 않은 담배 자국이 남아 있었고, 손가락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늘었다.

유라는 그의 시선을 느끼고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노인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더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언덕 위를 가리켰다.

그 손짓은 마치 유라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유라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듯 몸을 살짝 굽힌 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은 더 가팔라졌다. 숨이 거칠어졌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묘한 설렘이 조금씩 올라왔다.

마침내 언덕 꼭대기에 가까워지자, 도로는 갑자기 넓어졌다.

왼쪽으로 펼쳐진 길은 절벽 가장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다시 도시의 안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들이 내려다보였다.

유라는 무의식적으로 왼쪽 길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까지 이어진 가로등들이 낮의 빛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 아래로 이어진 도로는 다른 길보다 조금 더 어두워 보였다. 마치 낮에도 밤의 껍질을 완전히 벗지 못한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가 그림자 항로이자, 그녀가 꿈에서 보았던 빛의 항로의 실제 모습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유라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며 도로의 가장자리까지 다가갔다. 절벽 아래로는 항만의 풍경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화물선들이 점처럼 떠 있었고, 크레인들이 천천히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이 강해졌다. 머리카락이 얼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라는 가방 안에서 작은 노트를 꺼냈다. 노트 첫 장에는 자신이 이 도시에 착신하기 전에 적어둔 문장이 남아 있었다.

빛의 항로 끝에서 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문장은 예언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노트를 다시 가방에 넣고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낮이라서 그런지 길 위에는 몇 대의 차량이 오가고 있었다. 낡은 트럭, 창문이 반쯤 내려간 승용차, 그리고 배달 오토바이.

그러나 이 길은 통행량이 많은 대로라기보다는 도시 안쪽을 우회하는 변두리 도로에 가까웠다. 차들 사이에는 짧은 정적이 자주 끼어들었고, 그 사이에 유라의 발걸음 소리만 조용히 이어졌다.

그녀는 길을 걷는 동안 계속 주변을 살폈다. 꿈 속에서 보았던 장면과 어디가 닮았는지, 어디가 다른지 비교하듯이.

가로등 사이 간격. 절벽의 높이. 도로 옆에 쌓인 먼지와 모래.

꿈은 조금 더 어두웠다. 그러나 기반은 분명 이 길이었다.

유라는 도로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문득 한쪽 어깨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피로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길 이편에서도 아니고, 절벽 아래 항만에서도 아니었다. 시선은 도시 안쪽, 언덕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이 길을 바라보고 서 있었던 자리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처럼.

유라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도로는 비어 있었다. 자신이 지나온 방향에는 트럭 한 대가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었고, 그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선의 느낌은 금세 사라졌지만, 대신 다른 감각이 몸을 스쳤다.

누군가의 목소리.

아직 실제 소리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귀와 머릿속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낮은 속삭임.

돌아왔구나.

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이 도시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가 알고 있는 가족도, 친구도,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녀의 삶은 다른 곳에 열심히 묶여 있었다.

그런데 돌아왔다는 인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도시 반대편을 향해 도로가 약간 휘어지는 지점에서, 언덕 위 빌라 몇 채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건물들과 달리 조금 더 낡았고, 건물 벽에는 오래된 페인트가 비늘처럼 벗겨져 있었다.

유라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그 빌라들을 향해 기울어졌다.

그 중 한 채의 2층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커튼이 반쯤 쳐져 있었고, 그 사이로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였다가 금세 사라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그 창문에서 도로를 내려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라는 그 생각을 떨치지 못한 채 그대로 한참을 서 있었다.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약도에서 표시한 지점 근처에 와 있다는 사실을.

빛의 항로 위, 언덕 빌라들이 도로를 내려다보는 위치. 동그라미 표시가 있던 장소.

약도에는 이곳에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빛의 항로와 도시의 균열을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자리라는 설명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유라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이 앞으로 자신의 발걸음을 여러 번 묶어둘 지점이라는 것을.

그녀는 빌라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가장 왼쪽 빌라는 벽에 덩굴이 엉켜 있었고, 작은 창문들에는 낡은 철제 난간이 달려 있었다. 중앙의 빌라는 입구에 번호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있었고, 가장 오른쪽 빌라의 지하층 입구 근처에는 오래된 계단이 내려가고 있었다.

유라는 자연스럽게 오른쪽 빌라의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가로등 빛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낮인데도 계단 안쪽은 희미하게 어두웠다. 계단 벽에는 물이 스민 자국이 얼룩처럼 내려와 있었고, 바닥에는 오래된 전단지가 젖어 붙어 있었다.

그녀는 계단 입구에서 한동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곳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창고일까. 주차장일까.

아니면 자신의 꿈과 더 가까운 무언가일까.

바로 그때, 계단 아래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도 아니었고, 물 떨어지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숨을 삼키는 소리 같았다.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들이쉬는 소리.

유라는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한 첫날부터 지하 계단 아래에서 나는 낯선 숨소리를 따라 내려가는 것은 분명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발끝은 계단 첫 칸을 조심스럽게 건드리고 있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차가운 바람이 스며 올라왔다.

바람과 함께 희미한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내려오지 마.

유라는 뒤로 물러섰다.

목소리는 분명 계단 아래에서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머리 위, 언덕 위쪽 어디선가 내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길은 조용했다. 차 한 대가 멀리서 지나가고 있었고, 가로등은 낮의 빛 속에서 존재감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확실히 존재했다.

내려오지 마. 여긴 아직 네 자리가 아니야.

마치 오래전에 이 도시를 떠난 누군가가 아는 이에게 남긴 충고처럼, 어딘가 다정하면서도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유라는 다시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방금 전의 일들이 모두 그녀의 상상 속 장면이었다는 듯, 계단은 그저 물 얼룩과 낡은 벽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소녀는 입술을 깨물고 계단에서 물러났다.

지금은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빌라들 사이 골목을 지나 언덕 위쪽으로 조금 더 걸었다.

언덕 꼭대기에는 작은 마을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정류장 옆 담벼락에는 도시 안내 지도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안내 지도는 이미 오래되어 일부는 뜯겨 나가고, 일부는 낙서로 덮여 있었다.

그 낙서들 사이에, 유라의 눈을 잡아끄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심연극장.

지도 상으로 도시의 하층 구역 근처에 표시된 작은 상징 옆에 누군가가 심연극장이라고 적어두고 그 위에 엇갈린 선을 그어 놓은 흔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 단어를 눈으로 천천히 따라 읽었다.

심연극장은 이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이름일 수도 있었다. 공식 명칭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이름은 유라의 머릿속 어딘가에 이미 박혀 있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여러 번 불러준 적이 있는 이름처럼.

그녀는 손가락으로 지도 위 심연극장이 표시된 위치를 가볍게 짚어보았다.

항만과 하층 구역 사이, 오래된 창고와 철길이 뒤엉킨 좁은 지역. 그 근처에는 바람막이 창고라는 글씨도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바람막이 창고.

그 단어 역시 유라에게 낯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캔버스 가방을 더 꼭 끌어안았다. 가방 안에는 오래전부터 아무렇게나 접힌 메모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 메모에는 언젠가 어디선가 적어 두었던 한 주소가 있었다.

하층 항만 구역. 레인 47. 바람막이 창고.

그 주소를 적을 당시의 일은 흐릿했지만, 주소 자체는 이상하리만큼 손에 익어 있었다.

지금 유라가 보고 있는 지도에는 어렴풋이 그 주소 일부가 겹쳐 보였다.

이 도시와 자신이, 생각보다 깊게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연결은 단순한 우연이나 여행자의 호기심으로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는 지도에서 손을 떼고 버스 정류장 벤치에 잠시 앉았다. 언덕 위 바람은 아래보다 조금 더 차가웠다.

유라는 눈을 감았다.

다시 꿈 속 도로가 떠올랐다. 절벽, 가로등, 길게 이어진 그림자, 그리고 멀리서 보이던 누군가의 뒷모습.

그 뒷모습 위로 이름 하나가 겹쳐졌다.

리세.

사진 뒷면에 적힌 이름. 메모에 적힌 이름. 수첩에 적힌 이름.

그러나 유라는 그 이름의 주인을 떠올릴 수 없었다.

얼굴과 이름이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상태였다. 얼굴은 사진 속에 존재했고, 이름은 종이와 머릿속 어딘가에 따로 떠 있었다.

그 사이, 도시는 자기만의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언덕 아래 어느 빌라에서는 한 여자가 낡은 침대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었고, 그 여자의 손에는 작은 B2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리테라는 이름을 임시로 가진 그 여자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지하로 내려갈 용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덕 위, 빛의 항로와 도시의 균열을 동시에 내려다볼 수 있는 벤치에서, 또 다른 소녀 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했다.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공유하지 못했다.

그러나 도시의 밑바닥과 언덕 위를 잇는 보이지 않는 선이, 아주 천천히 두 사람의 발밑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유라는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빛의 항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는 구름 뒤에서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가로등은 아직 켜지지 않았지만, 그 기둥은 오래된 등불처럼 모여 서 있었다.

밤이 되면 이 길은 다시 다른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

그녀가 꿈에서 보던 장면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

그리고 어쩌면 그때, 이 도시의 또 다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몰랐다.

유라는 숨을 들이마셨다. 바다와 금속과 먼지와 비가 뒤섞인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이 도시에 온 이유는 분명했다.

빛의 항로를 끝까지 걸어가기 위해.

그 길 끝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누군가와 다시 마주치기 위해.

그 누군가가 리세인지, 혹은 전혀 다른 사람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만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이 도시의 어디엔가, 오래전에 끊어진 무언가가 여전히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라는 빛의 항로 위를 천천히 걸었다.

가로등이 하나씩 긴 그림자를 도로 위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아직은 낮이지만, 세상은 이미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이미 이 길을 걸었었고, 이제 그 길을 다시 확인하러 돌아온 사람처럼.

도시의 숨소리와 바다의 숨소리가 겹쳐지는 지점에서, 한 소녀는 빛의 항로를 향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언덕 아래, 도시 밑바닥에서 잠든 또 다른 여인이 모르는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