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저녁은 언제나 느리게 찾아왔다. 그림자 항로 위에 가로등이 완전히 켜지기까지는 시간을 질질 끌며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 사이 도시 중심부에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항만에서는 저녁 작업을 마무리하는 경적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언덕 아래 오래된 골목과 그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들은 낮과 밤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 식당은 특히 오래되고 폐허처럼 보였다.
간판은 글자가 거의 지워져 무슨 이름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었고, 문 위에는 조그만 전등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벽에는 습기가 오르고, 창문에는 오래된 먼지가 바람 따라 흔들렸다.
사람들은 이곳을 폐허 식당이라 불렀다.
정식 이름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을 뿐이었다.
이름을 잃은 장소처럼, 이 식당도 모두의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리테는 방에서 나와 빛의 항로 쪽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를 곳이 필요했다. 빌라의 복도는 여전히 어둠을 머금고 있었고, 계단 아래에서 들렸던 낮은 속삭임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그녀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문 밖의 공기는 차가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옷깃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몸을 살짝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나 리테는 계속 걸었다. 누가 자신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등을 계속 밀어붙였다.
폐허 식당은 빌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언덕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식당의 낡은 간판이 보였다.
식당 안에는 불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지만, 그 불빛은 따뜻하기보다는 오래된 전구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리테는 문을 밀었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찌르르 울리며 흔들렸다.
식당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테이블은 대부분 닳아 있었고, 의자들은 삐걱거렸다.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된 흔적들이 묻어 있었다. 식당 중앙에는 큰 나무 탁자가 있었는데, 테이블의 한쪽 모서리가 깨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리테는 식당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주방 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 식당은 주인이 있긴 하나 대부분의 시간을 방치된 채 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오래되어 앉을 때마다 삐걱 소리를 냈다.
리테가 숨을 고르고 있던 순간이었다.
식당 한쪽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발걸음이 끌려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주방 입구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정확한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베어 있었고, 검은 앞치마는 빛이 바랬다.
그는 잠시 리테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을 손으로 한번 쓸었다.
리테는 입술을 달싹이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잠깐만 쉬어도 될까요.
사내는 대답 없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말의 무게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리테는 다시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에는 폐기된 식품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구석에는 오래된 라디오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었다.
식당은 사람들의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보였고, 그 작은 침묵 속에서 리테는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순간.
식당 한쪽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아니야.
리테는 몸을 굳혔다.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그녀가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눈동자는 깊은 그림자 속에 갇혀 있어 그의 감정을 읽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때였다.
라디오에서 갑자기 소리가 튀었다.
고장난 기계가 마지막 신호를 보내는 듯한 먹먹한 소리였다.
그 소리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테.
그 목소리는 식당 전체를 가르는 것처럼 울렸다.
그러나 라디오의 전구는 깜빡이지도 않았고, 라디오의 전원은 꺼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 목소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리테는 문득 자신이 앉은 자리 아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기억의 조각처럼 스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밤의 복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달리는 순간, 뒤에서 따라오는 그림자들의 움직임. 계단 아래에서 들리던 이상한 속삭임들.
그 모든 것들이 이 순간, 폐허 식당의 공기 속에서 한 번에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리테는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들었다.
식당의 사내는 여전히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주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여기선 오래 머무르지 마.
이 말은 단순한 경고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받은 오래된 문장을 다시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리테는 그에게 물었다.
저를 아세요.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네 얼굴은 처음 본다. 그러나 이 도시는 아니. 이 도시는 누구에게도 처음이 아니지.
그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도시는 누구에게도 처음이 아니다.
그 말이 그녀에게 닿는 순간, 리테는 이상한 불길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미 오래전에 반복된 적이 있는 사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 식당 구석에서 한 소년의 낮은 비명 같은 숨소리가 들렸다.
리테는 몸을 돌려 식당 한쪽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 위 공기가 어딘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방금까지 거기 앉아 있었던 것처럼, 혹은 아직도 앉아 있는 것처럼.
리테는 갑자기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관자놀이 주변에서 심하게 울리는 박동이 머리 전체를 흔들었다.
손을 이마에 가져가자 통증이 손가락까지 퍼져나갔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안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내는 조용히 말했다.
악몽을 본 적 있지.
리테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모두 이 길을 지나간다.
기억을 잃은 채로 오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니야.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악몽을 듣고 떠난다.
리테는 식당 한쪽 벽에 손을 짚고 몸을 지탱했다.
식당 천장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바닥이 흔들렸다.
악몽.
그 단어는 마치 그녀의 머릿속 깊은 곳에 숨겨진 기억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식당 창문 밖에서 누군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길게, 거칠게, 마치 누군가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리테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문 유리에 비친 그림자는 작고, 마르고, 익숙하게 느껴지는 실루엣이었다.
유라였다.
단 한 번 본 적도 없는 얼굴.
그러나 꿈 속에서와 같던 그 실루엣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익숙한 파동을 일으켰다.
리테는 식당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길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리테는 발밑의 먼지가 조금씩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 방금 전에 지나간 흔적이었다.
그녀는 그 발걸음만을 따라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도시의 밤공기는 차가웠고, 길은 점점 어두워졌다.
리테의 몸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했다.
누군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세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또 누군가가.
그리고 그녀는 이 도시 어디엔가, 똑같은 단서를 손에 쥔 채 같은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리테는 멈추지 않았다.
악몽의 조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각은 이제 그녀를 둘러싸고 완전한 그림을 만들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