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8부 심연극장의 문을 부르는 세 가지 신호

도시는 완전히 밤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 가늘게 피어올랐고, 골목의 그림자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길게 늘어지며 도로 위를 기어 다녔다. 오래된 창문들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떨렸고, 빌라 간판들은 약한 전류가 흐르듯 깜빡였다.

리테는 골목을 벗어나 언덕 아래의 큰 길로 나왔다. 폐허 식당에서 들었던 이상한 목소리와, 골목에서 만난 사내의 차가운 눈빛이 아직도 몸 속에 깊게 남아 있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 속에 잠겨 있었지만, 그 혼란 사이로 뚜렷하게 부상하는 단서 하나가 있었다.

심연극장.

그 이름만이 현재를 붙잡아 주고 있었다.

바람막이 창고에서 발견된 리세 출입 카드, 방 안에 숨겨진 상자 속 문서들, 지도에 낙서처럼 적힌 이름, 그리고 방금 사라진 사내의 표정.
모든 것이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리테는 손에 쥔 작은 플라스틱 카드를 가방 깊숙이 넣은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심연극장은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지도에도 정확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낙서한 사람조차 정확한 좌표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도시의 하층 구역 어딘가에 묻혀 있을 뿐, 공식 문서나 안내판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리테는 그 방향을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오래전 그녀에게 그 길을 미리 알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리테는 큰 도로를 지나 다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 골목은 낮에도 어둡고 밤이면 더 어둠이 깊어지는 곳이었다.
벽에는 오래된 칠이 벗겨져 보기만 해도 불안한 기운이 묻어났다.
바닥에는 물과 기름이 섞여 빛을 흡수한 듯 번들거렸다.

그때 골목 위쪽에서 먹먹한 금속음이 울렸다.
먼 곳에서 울리는 종소리 같은 울림.

처음에는 단순한 도시의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컨테이너를 옮기는 크레인 소리일 수도 있었고, 항만에서 들려오는 기계 장치의 울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몇 걸음 더 내딛자 그 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더 가까운 곳에서, 더 명확한 진동을 담은 소리였다.

그리고 세 번째 울림이 골목을 가득 메운 순간, 리테는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도시의 소음이 아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다.

종소리는 일정한 억양을 갖고 있었고, 울릴 때마다 공기가 아주 가볍게 흔들렸다.
마치 깊은 지하 어딘가에서 울리는 호흡 같은 울림이었다.

그 소리는 리테를 향한 신호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신호를 분석할 시간도 없이 다시 또 다른 신호 하나를 받았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바람.

그 바람은 따뜻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갑지도 않았다.
어떤温度도 아닌 공기, 마치 지상과 다른 층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바람은 골목 끝에서 불어 왔다.
하지만 골목 끝에는 계단도, 도로도, 통풍구도 없었다.
벽뿐이었다.

그런데도 바람은 그 벽 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벽 너머에 공간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리테는 자신이 첫 번째 신호를 들은 뒤 두 번째 신호를 느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세 번째 신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

뒤쪽 빌라에서 누군가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는 작았지만 발뒤꿈치에 닿는 압력이 가볍지 않았다.
분명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주었다.

낯설었다.
그러나 익숙했다.

숨을 가다듬은 뒤 리테는 골목 뒤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이 크게 울렸다.

가로등 아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그림자의 주인은 숨을 고르듯 얕은 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림자는 어린 소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빛의 항로에서 본 것처럼 가볍게 흔들렸고, 어깨 위에 얹힌 배낭 끈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났다.

그 소녀는 유라였다.

리테는 손에 있는 벽을 꼭 잡았다.
어깨가 떨렸다.

마침내 두 신호가 이어진 것이다.
종소리는 리테를 부르고 있었고, 바람은 지하로 이어진 공간을 알려주고 있었고, 이 순간 세 번째 신호는 유라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유라 역시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리테를 바라봤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식은 곧 혼란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서로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유라가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혹시.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끝내지 못했다.

리테의 입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너.

그때였다.

골목 위쪽에서 네 번째 울림이 발생했다.
도시의 경적도 아니고, 기계의 진동도 아닌, 아주 낮고 깊은 소리.
그 소리는 공기 전체를 흔들었다.
바닥의 물웅덩이마저 파문을 일으켰다.

유라와 리테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골목 끝의 벽 사이에서 검은 실선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눈에 보이는 균열처럼 벽의 한쪽이 아주 조금 벌어졌고, 그 틈 사이로 어두운 공간이 드러났다.

그 틈 너머에서 희미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 조명은 바람막이 창고에서 본 형광등과 닮았지만, 훨씬 더 깊고 무겁고 차가운 빛이었다.

문은 열리는 것이 아니라, 틈이 벌어진 것이다.
누군가 조작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반응한 것이었다.

세 가지 신호가 겹치며 심연극장의 문이 열리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신호는 종소리.
두 번째 신호는 지하에서 올라온 바람.
세 번째 신호는 두 사람의 마주침.

모든 조합이 갖추어지자 도시의 균열이 열리기 시작했다.

유라가 숨을 삼켰다.

이건 뭐야.

리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틈 너머에서 갑자기 또 다른 움직임이 느껴졌다.
발소리.
한 사람의 발걸음이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천천히 빛 영역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긴 코트 자락이 빛과 어둠을 나누며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계단 위로 고개를 들어 말했다.

왔구나.

유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리테의 심장은 얼어붙었다.

그 목소리는 골목에서 그녀를 붙잡던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심연극장의 문을 여는 세 가지 신호가 모두 갖춰지자, 그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 시작이다.

지하에서 올라온 공기가 골목 전체를 흔들었다.
교묘하고 은밀한 도시의 깊은 균열이 숨을 골랐다.

유라와 리테는 그 앞에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심연극장은 그들을 이미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