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0부 지하의 첫 문이 열릴 때

심연극장의 입구는 도시의 균열 속에서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숨겨진 동맥처럼 깊게 이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발끝이 어둠 속 계단 위에 닿는 순간 공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마치 지하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그들의 발걸음을 감지하며 가볍게 숨을 내쉬는 듯한 떨림이었다.

계단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어둡게 내려가 있었다. 가로등이나 등불 같은 것은 없었지만, 벽면 자체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오는 듯했다. 오래된 사암이나 벽면에 스민 광물질이 빛을 반사하는 것 같은 느낌. 그 빛은 너무 약해 그림자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대신 어둠이 빛보다 더 두껍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유라는 조심스럽게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갔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금속도 콘크리트도 아니었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돌과 섞여 있는 것 같은, 단단하지만 미묘하게 탄력이 있는 낯선 감촉이었다.

리테는 손끝으로 벽을 더듬으며 따라 내려갔다. 벽면에 닿는 촉감은 이상하게 사람의 피부와 비슷했다. 부드럽고 따뜻하지는 않지만, 왠지 살아 있는 무언가와 닮아 있는 촉감. 그녀는 잠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이 계단 자체가 생명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남자의 발걸음은 뒤에서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그는 두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내려오고 있었고, 그렇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더 불안감을 조성했다.

유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래에는 뭐가 있어
심연극장이 정말 있는 거야

남자는 빠르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단 끝 어둠을 가리키며 천천히 말했다.

심연극장은 장소가 아니야. 하나의 문이지. 그리고 그 문은 찾으러 온 사람들이 열어야 해.

그 말은 설명과 동시에 설명을 지우는 말이었다.
유라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물을 기운도 없었다. 분위기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계단이 어느 순간부터 거의 수직으로 떨어질 듯하게 깊어졌다.
두 사람은 손잡이도 없는 계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갔고, 마침내 계단의 마지막 칸에 도착했다.

그곳은 넓은 공간이었다.

천장은 도시의 빌라 높이만큼이나 높고, 사방 벽은 흙과 금속이 뒤섞인 경계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 곳곳에서 붉은빛, 보랏빛, 회색빛이 서로 얽혀 나오는 모양이 마치 살아 있는 신경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가장 중앙에는 무언가가 서 있었다.

문이었다.

문은 나무도 쇠도 아니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설명할 수 없는 질감.
빛에 따라 표면이 물결처럼 흔들리기도 하고, 금속처럼 빛나기도 하고, 심지어 살아 있는 살결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라와 리테는 동시에 숨을 삼켰다.

문은 아주 거대했다.
사람 키의 두세 배 정도 높이.
손잡이도 없고 경첩도 없었다.
그저 벽 한가운데에 정확하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문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문 표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문 표면이 조용히 떨렸다.
마치 그 두드림이 신호인 것처럼.

이 문은 살아 있어
그리고 이 문은 기억을 먹지.

유라와 리테는 동시에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기억을 먹는다니.
그 말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유라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기억을 먹으면… 사람은 어떻게 돼

남자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저 비어 있는 듯했다.

기억을 잃은 사람은 이 도시로 흘러들어오지.
계단 입구에서 너를 봤을 때 이미 알고 있었어. 너도 자신의 기억 중 일부를 이 문에게 준 사람이라는 걸.

유라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내가… 기억을 준 적이 있다고
무슨 말이야
난 이 도시에 처음 왔는데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 너는 이 도시에 온 적이 있어.
기억이 사라졌을 뿐이야.
심연극장은 기억을 돌려줄 수 있어.
그러나 대가도 있지.
잃은 만큼, 다시 되찾기 위해 내려가야만 해.

리테는 남자의 말에서 중요한 단어 하나가 튀어올랐다.

잃은 만큼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목걸이를 잡았다.
금속 조각에 새겨진 리테라는 글자가 손끝에서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옆에 희미하게 지워진 자국이 있었다.
마치 다른 이름이 있었다가 지워진 것처럼.

리세.

그 이름은 한순간 리테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혔다.
마치 오래전 문에 기억을 먹힌 상태로 이 도시를 다시 찾은 것처럼.

남자는 마침내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너희 둘은 문을 열 자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같은 사람의 그림자였으니까.

유라와 리테는 동시에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말은 난데없이 들리면서도,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연결감을 만들어냈다.

같은 사람의 그림자
그녀들의 잃어버린 기억과 얽힌 이름
리세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문은 손으로 밀어 열리지만, 기억으로만 통과할 수 있어.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너희는 너희 둘 중 한 사람의 진실을 먼저 마주하게 될 거야.

유라는 손을 들어 문 표면을 바라보았다.
빛이 움직이듯 문이 일렁거렸다.

리테 역시 조심스럽게 다가가 문 바로 앞에 섰다.

둘은 동시에 문 앞에 서서 숨을 들이마셨다.

모든 단서가 이곳에 모였다.
심연극장
잃어버린 기억
그림자
리세라는 이름
폐허 식당에서 들린 목소리
골목에서 마주친 남자의 경고

이 문 뒤에는 그 모든 것의 근원이 있을 것이다.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선택해.
문을 열 것인지.
아니면 기억을 이 상태로 영원히 묻어둘 것인지.

유라는 손을 내밀어 문 표면에 닿았다.
리테도 손을 올렸다.
두 사람의 손이 문 위에서 서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손끝이 닿기 직전,
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문이 그들 둘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살아 있는 것처럼
문이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빛인지 어둠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문 틈에서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문이 열리는 순간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문이 스스로 열렸다는 것.
그건 곧 심연극장이 그들을 이미 선택했다는 뜻이었다.

문이 완전히 열렸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마침내 잊혀진 이름의 첫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