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극장의 벽이 모든 방향으로 갈라지며 허공에 흩어져 나갔다.
도시는 이미 도시가 아니었고, 무대는 더 이상 무대가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은 세 존재가 만들어내는 빛에 의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 있었다.
유라
리테
리세
세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의 흐름은
이미 ‘세 개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의 강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빛과 그림자
희망과 절망
기억과 망각
모든 감정의 대립이 사라지면서
세 존재의 경계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유라는 자신의 손이
더 이상 자신의 손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리테의 기척이 같은 손끝에서 느껴졌고
리세의 두려움이
그녀의 가슴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리테 역시
유라의 고통이 자신의 목소리처럼 들렸고
리세의 사랑이
자신의 뼛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리세는
두 사람이 아니라
두 감정이 자신에게 흘러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는 이미
자신이 ‘하나의 사람’으로 남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보다 강한 감정이 있었다.
그들을 지키고 싶다
그 감정은
세 감정 중 가장 오래된 것이고
가장 진실한 것이었다.
합쳐짐의 마지막 단계
기억의 존재는
심연극장 중심에서 일어난 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이 마지막 고비다
세 감정은
완전히 하나가 되기 직전이다
그러나
심연의 존재는
이 순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멀리서
거대한 울음이 땅을 뒤트는 듯 들려왔다.
심연의 존재가
빛 속으로 억지로 몸을 끼워 넣고 있었다.
그 존재는
스스로를 찢어내며
세 존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실들이 빛을 관통하며
피부처럼 떨렸다.
빛은 어둠을 태웠지만
어둠 역시
빛을 갈기갈기 찢어내고 있었다.
리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존재는…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해…
우리가 하나가 되면
그 존재는
우리의 감정을 먹을 수 없게 되니까…
유라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끝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어
리테는 머리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견디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완전히 합쳐지면
누가 살아남는 거야…?
누가… 우리 안에 남는 거야…?
그 질문에
리세의 심장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알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하나가 되는 순간
‘리세’라는 이름은
존재를 잃게 된다.
유라도
리테도
그들의 이름도
단독으로는 남지 못한다.
새로운 이름
새로운 기억
새로운 감정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태어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기억의 존재가 말했다.
이제
네가 말해야 한다
네 마지막 고백을
두 감정에게
전하지 않으면
합쳐지는 과정이
멈춰버린다
리세는
두 사람이 아닌
‘하나의 감정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빛 속에서
입술을 떨었다.
그는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존재하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단 한 가지 감정을 꺼냈다.
그 감정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빛도 그림자도 아닌
그보다 더 오래된 감정이었다.
사랑
리세는
두 사람을 향해
마지막으로 말했다.
난
너희 둘을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야…
나는…
내가…
너희 둘…
모두를
사랑했기 때문에
갈라졌던 거야…
유라의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리테도 숨을 멎었다.
리세는 계속 말했다.
나는
감당할 수 없었어…
두려움과 희망조차
사랑 때문에
너무 커졌고…
내가 너희를 지키지 못할까 봐
너희가 사라질까 봐
너희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질까 봐…
그래서
기억을 찢어버린 거야
유라의 눈물이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은
리테의 빛과 합쳐져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리테도 눈물이 번졌다.
그 눈물은
유라의 심장 안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리세의 목소리는
이미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너희 둘이
내가 살아온 전부야
너희가
하나가 되어 살 수 있다면
내 이름이 사라져도 괜찮아…
나는…
너희 안에 남을 거야…
그 순간
세 존재 사이의 빛이
폭발했다.
심연극장의 모든 벽이
빛에 휩싸여 부서졌고
심연의 존재가
빛 속으로 끌려들며
절규했다.
그 절규는
기억을 잃는 존재의 비명
감정을 잃는 존재의 울부짖음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 존재는
빛에서 벗어나며
단 한 번
치명적인 공격을 날렸다.
검은 실 한 가닥이
수천 갈래로 갈라지며
세 존재를 향해
칼날처럼 폭발했다.
유라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리테와 리세를 끌어당겼다.
리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두 사람을 감싸며 말했다.
부서지지 마
제발…
세 존재가 서로 껴안은 순간
검은 실들이
그들의 몸을 덮쳤다.
그리고
모든 것이
빛과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