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 날 아침
서이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떴다
알람을 끄고도 한참을 누워 있었다
전날 밤의 공기가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것처럼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이 조금 묵직했다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얼굴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어젯밤 이후
자신은 이미
이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출근 준비를 하며
남편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번 주말도 어렵다는 말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말
늘 같은 문장들
서이는 메시지를 읽고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보내지 않는 것이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다
부재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있었고
그 부재 속에서
서이는 혼자 지내는 법을
이미 배워버린 상태였다
우진 역시
아침을 조용히 맞이하고 있었다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
늘 듣던 라디오 소음
늘 같은 출근 시간
그러나 그의 안쪽에서는
어제의 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채
천천히 이어지고 있었다
돌아가지 않는 발걸음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공유된 선택
그 선택은
그를 조금 가볍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무겁게 만들었다
방송국에 도착해
원고를 정리하던 중
그는 문득
서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 말 없이 걷던 모습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던 눈빛
그 눈빛에는
확신도
두려움도
함께 담겨 있었다
우진은
그 눈빛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저녁
둘은 연락하지 않았다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이는 퇴근 후
집으로 바로 올라가지 않았다
언덕 아래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곳은
이제 더 이상 우연의 장소가 아니었다
잠시 뒤
우진이 나타났다
서로를 발견한 순간
둘은 동시에
아주 작은 미소를 지었다
서이가 말했다
오늘도
돌아가기 싫었어요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그 말은
이제 더 이상 고백이 아니었다
이미 공유된 사실이었다
둘은
말없이 걸었다
항구 쪽으로
사람이 적은 길로
불빛이 드문 방향으로
걷는 동안
서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분명히 들여다보았다
이 감정이
위로인지
도피인지
사랑인지
정확한 이름은
아직 붙일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우진이 조용히 말했다
서이씨
우리가 이렇게 계속 가면
언젠가는
말해야 할 날이 오겠죠
서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네
근데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조용히 가고 싶어요
그 말에는
부탁과
결심이
함께 담겨 있었다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걷다가
둘은 자연스럽게 멈췄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전과 달리
침묵이 길어졌다
그 침묵은
더 이상 피하는 침묵이 아니었다
서이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우진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손은 닿지 않았다
입술도
닿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둘은 멈췄다
우진이 낮게 말했다
지금은
여기까지만
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까지만
그 말은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제동이었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각자의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나
그날 밤
서이는 침대에 누워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부재를 견디던 사람의 마음이
이제
부재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신호였다
우진 역시
불을 끄지 않은 채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어젯밤 이후
자신이 더 이상
혼자인 척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고
약속하지 않았지만
이미
함께 선택한 방향이 있었다
부재로 돌아갈 수 없을 때
사람은
비로소
무언가를 잃을 준비와
얻을 준비를
동시에 하게 된다
서이와 우진은
그 경계에
이미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조용히
그들을 다음 단계로
밀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