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돌아온 뒤
집은 다시 사람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서이의 하루는
더 비어 있었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어도
서로의 하루를 묻지 않았고
대답이 필요한 질문도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남편은 신문을 펼쳤고
서이는 창가에 섰다
창밖의 불빛은
언제나처럼 언덕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서이는 그 불빛을 바라보며
함께 있어도 혼자인 밤이
이렇게 선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우진의 밤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친정에 머무는 동안
집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은
휴식이 아니라
공백에 가까웠다
그는
저녁을 대충 먹고
불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라디오를 켜면
자신의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아
켜지 않았다
그 대신
창문을 열고
바람이 들어오게 두었다
그 바람 속에서
서이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동안
서이와 우진은
일부러
마주치는 시간을 줄이려 했다
서이는 퇴근 후
집으로 바로 올라갔고
우진은 언덕 아래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있어도 혼자인 밤들은
둘을
같은 생각으로 이끌었다
서이는 남편 옆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숨소리는 들렸지만
그 숨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순간
우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조용히 서 있던 모습
이름을 부르던 밤의 공기
서이는
이불을 꼭 쥐었다
지금 이 집 안에서
자신은
혼자였다
우진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없는 침대는
넓었고
그 넓음이
그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서이에게 연락하는 것은
지금 이 밤을
더 선명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러나
연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함께 있어도 혼자인 밤
그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주말
남편은 집에 있었다
서이는 집을 비울 이유를
만들지 못했다
장 보러 나가자는 말
영화를 보자는 말
그 제안들은
형식적이었고
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걷는 동안
서이는
자신의 발걸음이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진열대 사이에서
남편이 말했다
요즘
말이 많이 없네
서이는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
그런가
그 말은
부정도
인정도 아니었다
같은 시간
우진은 혼자
언덕 아래를 걸었다
분식집 불빛을 지나
여인숙 방향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길
그는
그 길이
이제는
목적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언덕 아래에 서서
위쪽을 바라보았다
불빛은 있었고
그 불빛이
서이의 집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불빛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지금
혼자일까
그 질문은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날 밤
서이는 결국
집을 나섰다
남편이 샤워를 하는 사이
코트를 걸치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낯설지 않았다
그 길은
이미
몸에 새겨진 경로였다
우진은
그곳에 있었다
둘은
서로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놀라지도
설명하지도 않았다
서이가 먼저
낮게 말했다
같이 있어도
혼자였어요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집에 있어도
없는 것 같아요
그 말은
변명도
유혹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상태에 있다는 확인이었다
둘은
그날 오래 걷지 않았다
말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함께 서 있는 그 시간은
집 안에서 보내는
몇 시간보다
훨씬 더 현실처럼 느껴졌다
헤어지기 전
서이는 말했다
이렇게 나오는 게
옳지 않다는 거
알아요
우진은 대답했다
알아요
그러나
둘 다
돌아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서이는
문을 닫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남편의 기척은
이미 다시 집 안에 퍼져 있었지만
그 기척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우진 역시
집에 돌아와
불을 켜지 않은 채
창가에 섰다
함께 있어도 혼자인 밤들
그 밤들은
두 사람에게
같은 결론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이 상태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
누군가는
결국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은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