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이미 결심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직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한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다
부엌에서 남편이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신문을 넘기는 소리
시계를 확인하는 소리
모두 익숙한 소리들이었다
그 소리들 속에서
서이는 문득 깨달았다
이 집은 여전히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자신은 더 이상 이 집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늦을 것 같아
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 짧은 대화에는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서이는 그 사실이
조금 슬프면서도
이상하게 편안했다
우진의 아침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내는 부엌에서 간단히 아침을 챙겼고
그는 신문을 접었다
둘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의 하루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아내가 말했다
오늘
저녁에 친구 만나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말 뒤에
어떤 기대도
어떤 서운함도 없었다
그것이
이 관계의 현재 위치라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날 하루
서이는 회사에서
이상할 만큼 집중이 잘 되었다
머릿속이 정리된 사람처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동료가 말했다
요즘
좀 달라졌어
차분해졌달까
서이는 웃었다
그런가
그 말은
부정도
긍정도 아니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서이의 마음은
조용해졌다
불안이나 초조함이 아니라
결심을 앞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이상한 정적이었다
그날 저녁
언덕 아래에는
우진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가로등 아래에 서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서이가 다가가자
우진은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표정이 좀 달라 보여요
서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결정한 사람 얼굴인가 봐요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우진은 그 안의 진짜 의미를 느꼈다
둘은
천천히 걸었다
항구 쪽도
언덕 위도 아닌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을 따라
서이는 걸음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제
떠나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에는
장소도
날짜도 없었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우진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떠나는 사람은
결심하면
의외로 빨라요
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무서워요
우진은
그 말의 뒤를 이어 말했다
남는 사람은
준비할 시간이 없거든요
그 문장은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이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떠나면
누군가는
여기 남겠죠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항상 그래요
그 대답에는
원망도
책임도 없었다
그저
사실이었다
서이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래도
남는 사람이
더 오래 아픈 것 같아요
우진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요
떠나는 사람은
앞을 보지만
남는 사람은
뒤를 보니까요
서이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지금은
울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우진은
그 말이
곧 하게 될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건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그의 이름을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알아요
그래서
더 어려워요
그날
둘은 오래 걷지 않았다
말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밤보다
무거운 밤이었다
헤어지기 전
서이는 말했다
아직
끝은 아니에요
근데
이제
시작도
아닌 것 같아요
우진은
그 말의 의미를
천천히 받아들였다
그럼
지금은
경계네요
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서 있는 자리
집으로 돌아온 서이는
문을 닫고
불을 켜지 않았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집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 속에서
서이는 처음으로
이 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서의 시간
여기서의 기억
여기서의 역할
그 모든 것이
이미
자신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우진 역시
집에 돌아와
창가에 섰다
언덕 위의 불빛들
그 중 하나가
서이의 집이라는 것을
이제는
확인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는 사람이 더 오래 아프다는 말
그 말은
이제
그의 몸 안에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서이는
곧 떠날 것이다
물리적으로든
관계적으로든
그리고
그 떠남 이후의 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길게
자신에게 남을 것이라는 것을
그 밤
두 사람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이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서로를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