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22부 바다 절벽 아래의 은밀한 도시

심연극장이 거대한 몸부림을 치며 흔들리던 순간,어둠이 찢어지듯 뒤틀렸다.검은 실들이 공기를 갈라내며 폭발했지만바닥 아래의 깊은 층에서는 또 다른 진동이 일어나고 있었다.심연보다 더 아래,빛도 닿지 않고 기억도 내려가지 않는 깊은 틈. 그 틈에서 바람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바람도 아닌데 바람처럼 들리고누군가의 목소리도 아닌데누군가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소리. 유라는 순간적으로 그 소리가자신을 불렀다는 걸 느꼈다.리테는 귀를 막았지만막아도 들리는 소리였다.마음 안에서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21부 무너지는 마음이 만든 선택

심연 아래의 존재가 드디어 방향을 정한 순간,심연극장은 숨을 멈춘 것처럼 완전히 정적에 빠졌다.그림자 실들이 천천히 일어섰고공기 자체가 눌린 듯 가라앉았다.그리고 거대한 얼굴의 형체가리세를 향해 더 또렷하게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라는 절박하게 손을 뻗었다. 안 돼안 돼 안 돼그는 우리를 지키려고 했어 그러나 그 말은 심연에게 닿지 않았다.심연의 존재는 감정을 듣는 존재가 아니라감정을 ‘먹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20부 리세를 추적하는 검은 의뢰

심연극장은 더 이상 ‘공간’이 아니었다.그곳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숨을 쉬고 있었고세 사람, 유라, 리테, 리세의 그림자는심연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또 다른 거대한 그림자와 겹쳐지며하나의 무대처럼 얽혀 버리고 있었다. 사내의 외침.그 존재는 ‘먹는 존재’가 아니라기억을 빼앗는 ‘그림자의 주인’. 그 말은심연을 뒤흔드는 진실이었다. 그림자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사내는 단번에 리세를 향해 소리쳤다. 이제 숨길 수 없어너는이미 오래전부터그 존재에게 ‘의뢰’를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9부 가려진 무대에서 교환된 시선

심연 아래에서 치솟아 올라온 거대한 그림자는 이제 완전히 ‘형체’를 가진 듯 보였다.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아는 생명체의 구조와 전혀 닮지 않았다.빛을 흡수하며 기어오르는 검은 실들그 실들이 서로 엉켜 만들어낸 커다란 덩어리형체는 늘어났다 줄었다를 반복하며마치 살아 있는 악몽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존재는 공간 전체를 흔들며 울었다.울음이라기보다는기억을 짓눌러 깨뜨리는 소리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가장 어두운 감정을억지로 끄집어내는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8부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

심연 아래에서 치솟은 거대한 그림자는 단순히 ‘형체’라고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그것은 움직임 자체가 감정이었고, 감정 하나하나가 독립된 생명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공포슬픔상실분노미련그리고지워진 이름들 그 모든 조각이 뒤엉켜 만들어진 그림자가 바닥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며 공간을 뒤덮으려 하고 있었다.그 존재는 한 사람의 기억을 먹고 분리된 두 감정을 쫓는 존재.빛과 그림자 중먼저 흔들리는 쪽을 삼켜버리는 존재. 유라의 심장은 거의 고통에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7부 새벽 항로 아래에서 들리는 세 번째 심장소리

바닥 아래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그림자는 마치 물결처럼 공간 위를 덮치려 했다.검은 실들이 뭉쳐 만들어낸 덩어리는 생명체의 모습이라기보다, 감정이 갈라져 남은 어둠들이 서로 뒤엉켜 생긴 고통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어둠 속에서 갈라지는 목소리들이 하나같이 속삭이고 있었고, 그 속삭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각각의 언어를 가진 기억들이 모여 울부짖는 소리였다. 유라는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숨을 쉬는 것마저 무섭고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6부 기억이 부서진 자리에 다가오는 발걸음

심연의 심장 아래에서 터져 나온 울림은 이제 공간 전체에 퍼져 있었다.느리게, 그러나 무섭도록 규칙적인 파동이 바닥을 타고 올랐다.마치 거대한 짐승의 심장이 어둠 속에서 깨어나며 천천히 박동하는 소리처럼. 유라와 리테는 서로를 돌아보았다.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느끼는 두려움이 그대로 전달되었다.심연극장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저 존재가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어떤 형태를 가진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이제는 그들의 뼛속까지 들어와 있었다.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5부 기억의 틈에서 깨어난 또 하나의 그림자

세 사람 사이의 공기가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리세의 목소리가 울린 그 순간, 심연극장의 벽면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몸처럼 천천히 수축하며 심장박동 같은 파동을 만들어냈다.그 파동은 바닥 아래로 길게 내려가 심연의 더 깊은 층을 흔들었다.유라와 리테는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발밑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바닥이 아주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리세는 침착하게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그의 얼굴은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4부 세 개의 그림자가 서로를 비출 때

심연극장의 심장부에 울린 이름은 단 하나였다.리세.그러나 그 이름은 단순한 호명이 아니었다.그 이름이 공간을 울리는 순간, 공기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렸고, 세 사람의 발밑을 지탱하던 투명한 바닥은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마치 이 이름을 들어버린 순간부터, 이 공간이 더는 그들을 이전과 같은 존재로 두지 않겠다는 듯이. 유라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잊어버렸다.눈앞에 서 있는 존재가 자신과 닮았다는 직감.그러나 단순히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3부 심연극장의 심장부에서 들려오는 세 번째 목소리

공간의 울림이 점점 깊어지면서 리테와 유라는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발밑의 바닥은 여전히 투명해 보였고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발을 디딜 때마다 아래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파문을 만들어냈고 그 파문이 벽면까지 전달되어 사라진 이름들의 잔향을 불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분명 누군가의 기억이 머물던 장소였으며 동시에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는 장소이기도 했다. 리테는 손끝으로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