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8부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

심연 아래에서 치솟은 거대한 그림자는 단순히 ‘형체’라고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그것은 움직임 자체가 감정이었고, 감정 하나하나가 독립된 생명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공포슬픔상실분노미련그리고지워진 이름들 그 모든 조각이 뒤엉켜 만들어진 그림자가 바닥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며 공간을 뒤덮으려 하고 있었다.그 존재는 한 사람의 기억을 먹고 분리된 두 감정을 쫓는 존재.빛과 그림자 중먼저 흔들리는 쪽을 삼켜버리는 존재. 유라의 심장은 거의 고통에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7부 새벽 항로 아래에서 들리는 세 번째 심장소리

바닥 아래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그림자는 마치 물결처럼 공간 위를 덮치려 했다.검은 실들이 뭉쳐 만들어낸 덩어리는 생명체의 모습이라기보다, 감정이 갈라져 남은 어둠들이 서로 뒤엉켜 생긴 고통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어둠 속에서 갈라지는 목소리들이 하나같이 속삭이고 있었고, 그 속삭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각각의 언어를 가진 기억들이 모여 울부짖는 소리였다. 유라는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숨을 쉬는 것마저 무섭고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6부 기억이 부서진 자리에 다가오는 발걸음

심연의 심장 아래에서 터져 나온 울림은 이제 공간 전체에 퍼져 있었다.느리게, 그러나 무섭도록 규칙적인 파동이 바닥을 타고 올랐다.마치 거대한 짐승의 심장이 어둠 속에서 깨어나며 천천히 박동하는 소리처럼. 유라와 리테는 서로를 돌아보았다.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느끼는 두려움이 그대로 전달되었다.심연극장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저 존재가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어떤 형태를 가진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이제는 그들의 뼛속까지 들어와 있었다.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5부 기억의 틈에서 깨어난 또 하나의 그림자

세 사람 사이의 공기가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리세의 목소리가 울린 그 순간, 심연극장의 벽면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몸처럼 천천히 수축하며 심장박동 같은 파동을 만들어냈다.그 파동은 바닥 아래로 길게 내려가 심연의 더 깊은 층을 흔들었다.유라와 리테는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발밑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바닥이 아주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리세는 침착하게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그의 얼굴은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4부 세 개의 그림자가 서로를 비출 때

심연극장의 심장부에 울린 이름은 단 하나였다.리세.그러나 그 이름은 단순한 호명이 아니었다.그 이름이 공간을 울리는 순간, 공기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렸고, 세 사람의 발밑을 지탱하던 투명한 바닥은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마치 이 이름을 들어버린 순간부터, 이 공간이 더는 그들을 이전과 같은 존재로 두지 않겠다는 듯이. 유라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잊어버렸다.눈앞에 서 있는 존재가 자신과 닮았다는 직감.그러나 단순히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3부 심연극장의 심장부에서 들려오는 세 번째 목소리

공간의 울림이 점점 깊어지면서 리테와 유라는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발밑의 바닥은 여전히 투명해 보였고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발을 디딜 때마다 아래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파문을 만들어냈고 그 파문이 벽면까지 전달되어 사라진 이름들의 잔향을 불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분명 누군가의 기억이 머물던 장소였으며 동시에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는 장소이기도 했다. 리테는 손끝으로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2부 이름의 균열을 향해 걸어가는 자들

문을 지나자마자 공기가 바뀌었다.아니 정확히는 공기가 ‘무너졌다’라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유라와 리테가 들어선 공간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으며,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았다. 마치 공기라는 개념이 붕괴된 세계였고, 대신 아주 오래된 숨결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둘은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그러나 숨은 폐 속으로 제대로 도달하지 않았다.그냥 공기가 지나가는 느낌만 있었고, 산소의 감각은 희미해졌다. 리테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문 뒤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1부 문 너머에서 마주한 낯선 방과 잊혀진 첫 이름

문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떨리면서 천천히 열렸다. 그 떨림은 두 사람의 손끝을 타고 몸 전체로 퍼져 들어왔고, 마치 오래된 기억이 부활을 준비하며 신경줄기를 따라 움직이는 듯한 이상한 전율을 만들었다. 유라와 리테는 숨을 삼켰다. 문이 열리면서 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온 공기는 지하의 어둠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는데, 그냥 ‘온도’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10부 지하의 첫 문이 열릴 때

심연극장의 입구는 도시의 균열 속에서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숨겨진 동맥처럼 깊게 이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발끝이 어둠 속 계단 위에 닿는 순간 공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마치 지하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그들의 발걸음을 감지하며 가볍게 숨을 내쉬는 듯한 떨림이었다. 계단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어둡게 내려가 있었다. 가로등이나 등불 같은 것은 없었지만, 벽면 자체에서 희미한 … Read more

그림자 항로의 남쪽 끝 – 9부 심연 아래 첫걸음을 내딛는 자들

틈이 열린 골목은 마치 도시가 입을 벌려 무언가를 삼키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어둠의 균열은 아주 천천히 벌어진 채 그 안쪽 깊이를 드러내고 있었고, 그 틈 사이에서 올라오는 공기는 이상할 만큼 온기가 없었다. 따뜻함도 차가움도 없는 공기. 온도라는 감각이 사라진 층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기였다. 유라와 리테는 동시에 숨을 죽였다. 그들의 머리 위로 가로등 불빛이 … Read more